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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0] 등식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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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룹 총수의 선고공판에 대해 새 재판부가 ‘공부’가 필요하다며 변론을 재개키로 했다. 변론재개는 선고기일이 잡혔지만 새 증거 발견 등으로 인해 변론 기일을 한번 더 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배임·횡령에 대한 양형기준이 강화된 상황에서 총수들의 실형 판결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법조계와 재계의 관측이다. 게다가 비슷한 이유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터라 변론재개 결정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양형 조정을 위한 시간벌기, 재벌 총수 봐주기를 위한 사전 조율 등 벌써부터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비슷한 이유로 기소된 상태란 점에서 앞으로 재판 과정이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이 전 회장의 실형 구형을 통해 재벌 총수의 범법 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배임·횡령사건은 △범죄수익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경우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한 경우 △실질적 손해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경우 △반복적 범행 △범행 후 증거은폐 또는 은폐 시도 △지배권 강화나 기업 내 지위보전의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집행유예에 부정적이란 강화된 양형기준에 따라 실형 선고가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글로벌스탠다드로 가고 있다. 재벌 총수들의 범법 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나 이들을 단죄하는 법관들의 시각 역시 점차 글로벌스탠다드와 동조하는 경향이 느껴진다.

금세기 최악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불리는 美 엔론사태의 주범인 제프리 스킬링 전 CEO는 공모, 사기, 내부거래 등 19개 혐의로 유죄평결 후 무려 24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 회사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도 문을 닫아야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프리 스킬링은 물론 엔론의 모든 경영진들 역시 피해배상을 하거나 죄 값을 치러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의 배임·횡령 등과 같은 범죄는 대부분 총수 단독으로 행한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내부 고발자에 의한 범죄 사실이 드러나는 정황에서 알 수 있듯이 총수의 ‘나 홀로 범행’이 아닌 내부 공모자가 여럿 있을 것이란 개연성이다. 

이런 개연성의 이면에는 총수를 보좌하는 경영진, 즉 참모들의 과도한 충성과 자리 보존 때문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재벌의 태생적 한계와 구조적 특성 상 총수의 인사권은 무소불위다. 따라서 절대적 신임을 얻지 못하면 수시인사라는 명목으로 순식간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참모들의 충성경쟁이 ‘인의 장막’으로 작용해 때로는 총수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거나 배임·횡령을 통한 비자금 조성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게 한다. 이 과정에서 누가 주도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주범이나 종범 모두 범죄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명성과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이 기업경영의 근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고 경영자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과 정치권의 정책이 변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재벌 스스로의 환골탈태다. 이는 곧 총수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성호(재계탐사보도 전문매거진 에콘브레인 편집장 / shy19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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