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역사적 인물 화폭 담으며 현실인식 노력
“개념미술은 따분한 유머” 혹평… 스터키즘 나서 영국의 ‘전방위 아티스트’ 빌리 차일디시(53)를 지칭하는 말은 다양하다. 시인, 소설가, 펑크뮤지션, 영상감독 그리고 화가 등. 이런 호칭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한 가지로 단정되기를 거부하는 작가다. 하나를 긍정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미 부정되어 과거가 되어버린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려 한다. 그의 회화적 시도들은 지나치게 개념에 편중된 현대미술을 부정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과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삶을 조망하면서 현실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이어지고 있다.
“15년 전에 스위스 작가 로버트 왈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작품에 깊게 공감했고, 그 후 그의 인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리고 싶은 이미지들을 찾아보게 되었지요. 그렇게 이미지들을 찾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은 그 사람과 동질감을 느끼기 위함입니다. 넌지시 역사적 인물에 인사를 건네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론 저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의 삶에 자신을 대입시켜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고뇌와 감성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와 19세기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도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다. 뭉크나 고흐를 연상시키는 강한 붓 터치와 강렬한 색의 대비로 인물들의 강한 생명력을 전달하고 있다.
영역을 넘나드는 그에게 그림과 음악·문학 등은 단순한 매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아이가 하는 것처럼 이끌리는 것이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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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이상을 그린 작품 앞에 선 빌리 차일디시.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손가락질할 때 나만의 별을 쫓아야 한다”며 “어떤 영역에서 인정받기보다는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
그는 17세 때 펑크 록가수였고, 항상 예술의 거만함을 조롱하는 일에 가담했다. 당대 예술에 대해 순응하기보다는 언제나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그가 반미술운동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면서도 미술에 열중하는 것은 둘이 양립적이기 때문이다.
“저는 현대미술에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예술학교 세인트 마틴에서 퇴학을 당한 이유 중 하나가 갤러리나 전시에 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지요. 예술이 유행에 매우 치우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실망했지만, 명예와 부를 향한 규정된 길을 무시하고 어쨌든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현대미술이 부족한 개념으로 개념미술을 시도하고 지향한다고 꼬집는다. 지루하고 따분한 유머감각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영국 현대미술을 주도하고 있는 ‘YBA(young British artists)’들에게서 더 이상 실험적 가치는 발견할 수 없고, 작가가 부여한 그럴듯한 이미지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회화의 부재에서 찾은 미술운동 ‘스터키즘(Stuckism)’에 나서기도 했다.
회화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그의 그림에선 거친 드로잉 선이 꿈틀거린다.
“예술에 있어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드로잉이야말로 조각과 오브제, 영화와 설치작품 등에 존재하는 부족한 측면들을 채워줍니다. 제대로 연구하고 관찰되어 제작된 드로잉은 예술가가 단지 보는 것(look)이 아니라 인식(see)하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발전과 이해를 촉진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개입입니다. 지름길일 수도 있는 개념미술이 유혹적일 수는 있으나, 이는 예술을 향한 진정한 여정이 아닙니다. 기성품이 예술이 되었다면 예술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한 피카소의 말이 기억납니다.”
그는 한국의 근대문학가 이상과 이광수의 모습도 그림으로 담아냈다.
“한국인과의 소통이지요. 이광수의 소설 ‘무정’을 접하고 제목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겼어요. 이광수의 인생은 루이페르디낭 셀린(L F Celine) 혹은 크누트 함순(Knut Hamsun)과 같이 초기에는 칭송받았으나 적과의 동맹으로 인해 추락한 몇몇 주요 유럽 작가들의 인생과 매우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작가들을 몹시 좋아하는데, 이광수가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다가 후에 경멸을 당한 점에서 그들과 평행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그림을 그리면서 건축을 공부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그들이 남긴 오래된 사진들과 그들의 삶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왔습니다. 종종 인터넷에서 찾은 질 낮은 작은 인물 사진을 보고 작업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페도라를 쓴 젊고 모던한 모습의 이상과 전통적인 의복을 입은 이상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회화들이 인물의 정체성을 더 넓고 보편적인 형태로 초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100장 이상의 앨범, 40여권의 시집, 5권의 소설을 발표한 난독증을 가진 그는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냈다. 2년 전 바젤 아트페어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화가로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독일의 노이게림 슈나이더(Neugerriemschneider), 뉴욕의 리만 모핀(LehmannMaupin) 등 유명 갤러리에서의 대규모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무관심 속에서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를 이상하게 보는 눈길에도 불구하고-은 ‘기이한 용기(strange bravery)’를 필요로 합니다. 다른 모든 이들이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할 때 나만의 별을 쫓는 것이 제 인생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영역에서 인정받기보다 스스로를 인정하기를 원한다.
6월 3일까지 갤러리 현대. (02)2287-3500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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