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칸 드림, 그 애환의 현장을 가다]<22>남아共(2)요하네스버그 한인사회

알짜상권 장악 ''코리아 넘버원''

남아공의 한인들은 요하네스버그와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 입법수도이자 희망봉으로 유명한 케이프타운 등지에 많이 몰려 산다. 한인사회가 형성된 것은 1992년 12월 한국과 남아공이 수교한 뒤부터다. 처음 상사 주재원을 중심으로 시작된 한인사회는 그새 2000여명 규모로 불어났다.
짧은 기간에 이처럼 한인이 불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남아공은 아프리카 어느 나라보다도 기후조건이 좋고 교통 통신 등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영어권으로 교육 여건이 양호하면서도 학비가 싸다. 이 때문에 유학생과 선교사같이 유동적인 인구도 많은 편이다.
한인이 많이 종사하는 업종은 가발 사진현상 무역 여행 민박 자동차정비 식당 등. 이 가운데 특히 가발업종은 한인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니나와 린다 등 5개 업체가 일찍부터 진출해 남아공 내수는 물론 주변국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개인 사업으로는 사진관이 많다.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등지의 한인 현상소는 17곳에 이른다.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 취재진은 그간 찍은 필름을 맡길 겸 우범지구 한복판에 자리잡은 염상진(44)씨의 사진현상소를 찾았다. 창구쪽은 흑인 손님들로 붐빈다. 현상기가 있는 사무실 안쪽 출입문은 늘 잠가 놓는다고 한다. 범죄가 많은 곳이다 보니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놓는 것이다. 마침 염 사장의 아버지 태준(72)씨 등 가족들이 안에서 준비해온 밥과 라면을 들고 있었다. 아침과 점심을 겸한 식사였다.
"현상소는 언제부터 운영했습니까."
"2001년 9월 말 개업했어요. 아들(상진)이 9년쯤 현상일을 해왔습니다."
"무척 분주해 보이는데요."
"낮 시간이라 조금 덜합니다. 아침 8시부터 10시쯤까지가 제일 바빠요. 필름을 맡기는 고객이 하루 150명쯤 되는데, 보통 한 사람이 2∼3통씩 맡기거든요."
"이쪽 출입문은 늘 잠가 놓습니까."
"그래요. 권총강도가 종종 찾아오거든요. 우리와 거래하는 ''찍사''(자신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며 영업하는 사람)들이 대개 위험 인물을 알기 때문에 그런 친구가 오면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내줍니다."
현상소에는 경보시설이 있어 단추만 누르면 곧 부근에 있는 사설경호대가 출동하게 돼 있다. 위험스럽긴 해도 현상소가 강도에게 털린 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운영해온 서울식당은 최근 몇년 새 5차례나 권총강도를 당했다. 강도에게 반항하지 않으면 대개 돈만 가져가고 만다고 한다.
염씨 부자는 남아공에 왔다 실패한 한인을 많이 봤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개 아프리카라고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현지 한인을 다리 놓아 사업을 하려다 종종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전 준비도 필요하고 자신이 직접 확인해봐야 합니다."
"인건비가 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선 좋지만 일자리를 찾는 입장에서 보면 돈벌이 될 일감이 적다는 뜻이니까요. 미국 같은 데서야 무슨 일을 해도 웬만큼 돈벌이가 되지만 여긴 사정이 딴판입니다. 막연한 생각으론 안돼요. 쉽게 떼돈 벌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한인이 있다. ''이든글렌 모터스''와 무역회사 ''영 인터내셔널'' 대표 안영호(52)씨다. 1977년 대우실업에 입사한 그는 85년 남아공에 지사 창설차 파송됐다. 4년 뒤 직장을 그만둔 안씨는 92년 이곳 주유소를 샀다.
그의 주유소는 이든베일의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부근 주민은 대부분 백인 중류 가정이다. 부자 동네에 비하면 마음이 따뜻하고 사정이 잘 통해 장사하기도 좋다.
주유소 사무실. 취재진이 앉아 있던 뒷벽에서 간간이 "철커덩" "퉁" 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릴까.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안씨는 "사무실 금고에 돈다발 떨어지는 소리"라고 설명한다. 돈을 바깥에 두면 강도에게 다 털릴 수 있기 때문에 500랜드(약 6만원)씩 그때그때 안쪽으로 집어넣게 돼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사무실로 통하는 출입구엔 튼튼한 철문이 ''불청객''에 대비하고 있다.
주유소는 24시간 영업을 한다. 남아공에는 주택가 골목마다 따로 가게가 없어 이처럼 편의점을 겸한 주유소가 많다. 주유소는 거래 물량은 많아도 이윤은 8%선. 편의점 이윤은 30%나 돼 훨씬 실속이 있다.
안씨는 주유소와 편의점은 매니저에게 맡기고 다른 일을 많이 한다. 몇년째 법정 통역으로 한인을 위해 자원봉사를 해 왔고 올해 부터는 이 지역 한인회장도 맡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땐 법원 구경조차 못해 봤는데 여기선 수시로 들릅니다. 그새 ''반(半)변호사''가 됐습니다."
취재진과 만나는 날 아침에도 그는 공항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한인을 만났다.
대형 이민 가방 2개에 모자를 잔뜩 담아 왔다가 세관에 걸린 한국인이었다. 누가 봐도 장사하려고 가져온 물건인데, 그는 세관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탓에 결국 다른 비행기편으로 되돌아가는 신세가 됐다.
그가 만나는 한인은 이처럼 주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기 피해자, 나이키 등 유명상표를 붙여 가짜 물건을 대량으로 팔다 걸린 사람, 불법 체류 ''조선족'' 등등. 특히 남아공에는 불법 체류하다 수용된 중국동포가 많아 수시로 이들을 만난다.
그는 법원에서 통역하기 전에 이들의 사정을 많이 듣는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현지 한인교회에서도 여러 교민이 중국동포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어려움을 더는 데 힘쓰고 있다.
안씨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지난해 9월 그는 요하네스버그 동북쪽 스와질랜드에서 한국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구급용 경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보니 그는 이미 뇌사상태였다.
도요타 자동차 정비과장으로 일하던 김모씨였다. 병원에 사흘 머무르는 동안 안씨는 가족에게 김씨의 장기 기증을 권했다.
객지에서 비명에 가는 것을 섧게 여기던 가족들은 처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땅에 묻히면 몸뚱이는 썩습니다. 장기를 떼어주고 가면 죽어가는 사람 여럿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안씨의 설득에 유족은 결국 마음을 비웠다. 김씨의 안구와 간 폐 신장과 뼈가 다른 사람에게 이식됐다. 이국의 환자들에게 소생의 길을 열어 주고 그는 하늘나라로 갔다. 떠난 이도 유족들도 모두가 ''아름다운 한국인''이었다.
안씨 자신도 이미 장기기증을 서약해 놨다. 마지막 가는 길에 다른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야말로 숭고한 봉사의 기회라고 그는 믿는다. 그의 부인 박경숙씨는 오랫동안 한글학교 교사로 일해왔고 둘 사이에는 딸 셋이 있다.
/차준영기자 jycha@sgt.co.kr


<사진>요하네스버그 이든베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안영호씨(오른쪽)가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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