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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종증오’ 아픔 간직한 침몰선 120년 만에 찾았다

입력 : 2014-04-24 19:41:19 수정 : 2014-04-25 00: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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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오브체스터호’ 금문교 해저서 위치 확인 120여년 전 미국 내 외국인 혐오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증기선 선체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 해저에 침몰한 위치가 확인됐다.

1888년 8월22일 안개가 짙게 낀 아침에 미국인 승객 90명을 실은 61m 길이의 증기선 ‘시티오브체스터호’가 샌프란시스코만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증기선은 1㎞가 채 되지 않은 거리에서 대형 선박이 마주 오는 것을 확인했다. 홍콩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항으로 들어오던 원양정기선 ‘오셔닉호’였다. 이 배에는 승무원 74명과 승객 1062명이 탑승했으며 이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두 배는 서로에 신호를 주면서 비켜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당시 조수와 파도가 커 증기선이 항로를 이탈했다. 선장은 이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대형 원양정기선이 그대로 들이박으면서 증기선은 두 조각 나고 말았다.

선장은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증기선이 침몰하기까지는 6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승무원 3명과 남녀, 어린이 13명을 실은 채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당시 미국 사회는 골드 러시 이후 대규모 중국인 노동자가 미국에 유입되던 시기였다. 미국에서는 ‘황색 위협’(Yellow peril)에 대한 공포로 동양인 혐오증이 극에 달할 때였다. 미국 21대 체스터 아서 대통령이 중국인 이민을 전면 금지하는 ‘중국인추방법’에 서명한 지 6년이 지난 시기였다.

선박 충돌 사건은 동양인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 신문에는 오셔닉호가 항로를 비키지 않았다거나 중국인들이 물에 빠진 미국인들을 숨지도록 내버려 뒀다는 유언비어가 그대로 사실처럼 실리기도 했다.

시티오브체스터호(위)와 오셔닉호.
하지만 증언과 자료를 보면 오셔닉호는 물에 빠진 미국인 승객을 구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룽이라는 선원은 용감히 바다에 뛰어들어 어린 소년을 구하기도 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23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사고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사고 선박이 금문교 근처 6500m 해저에 똑바로 가라앉아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증기선 잔해가 발견됐으나 정확한 위치는 드러나지 않았다.

NOAA는 증기선을 인양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민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에 이번 발굴 결과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NOAA 관계자는 “샌프란시스코 초기 중국계 미국인 사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면서 “피부 색깔이나 종교, 국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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