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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옥시, 그리고 무능과 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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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5 21:49:38 수정 : 2016-05-26 2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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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정부 무능 드러나
책임 면피하려고
규정 없다는 해명만
시스템 바꿔야
노래방이라는 신종 사업장이 1990년대 초 서울에 본격 상륙했다. 일본에서 부산을 거쳐 들어온 새로운 문화였다. 스탠드바와는 달리 칸마다 밀실처럼 꾸며진 공간이 손님을 유혹했다. 신촌에 한 집 건너 노래방이 생겼다. 간판쟁이가 잠도 못 잘 정도였다. 하지만 설립요건이 없었다. 주류판매도 가능했고, 미성년자도 드나들었다. 급기야 사고가 터졌다. 1995년 12월 서울 진실노래방에서 불이 나 8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11월 부산의 자이언트 노래방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죽고 두 명이 다쳤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가 부랴부랴 나섰다. 방화 및 위생 규정을 강화하고 술을 팔 수 없도록 했다.

노래방 직전에는 실내낚시터가 붐을 일으켰다. 탁구장에 낚시터가 들어섰다. 욕조에 물고기를 풀어놓고 손맛을 즐기도록 했다. 낚아올린 물고기는 회를 떠주는 서비스까지 더해졌다. 스포츠시설에서 술을 팔았지만 단속 대상이 아니었다. 호황을 누리다가 식중독 소동 등으로 퇴장했다. 우리나라는 신종업태가 등장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영업을 하더라도 한동안 단속이 여의치 않다. 규정집에 나열돼 있지 않으면 단속할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옥시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옥시가 PHMG라는 물질을 희석해서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을 내놓았지만 규제 근거가 없었다. 어디에도 PHMG를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었다. 2001년에 만들어졌는데 무려 15년간 판매됐다. 외국에서는 엄격하게 관리되는 물질이었다. 공산품 등록을 받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기술표준원이 그나마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독성물질로 지정되지 않은 성분이어서 알아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어이가 없는 건 이 부처가 다른 한 제품에는 KC마크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문제가 커지자 가습기 살균제는 국민건강 문제라는 이유로 산업부가 손을 뗐다. 보건복지부로 넘어갔다. 질병관리본부 등이 조사해보니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국민건강 정도가 아니라 환경문제라고 떠넘겼다. 졸지에 가습기 살균제 이슈가 환경부로 넘어갔다. 환경부가 손댈 법적 근거가 발효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그 이전 14년간 이리저리 떠넘겨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유령으로 돌아다녔다. 기자가 최근 쓴소리를 담은 글을 쓸 때마다 여러 부처에서 관련규정이 없었다거나, 소관사항이 아니었다는 해명자료를 만들어 보내기 바쁜 게 현실이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였다. 현장에 들렀던 고위층 인사에게 강남서장이 보고하면서 성수대교 관할은 성동경찰서라고 말했다. 성동서장이 사고 책임자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이 떠오르는 이유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 관료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금 옥시 사태는 두 가지가 뒤범벅돼 국민들을 참담하게 한다. 하나는 다수가 위험에 빠져 있는데도 이를 방어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국가의 허술함이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책임면피주의이다. 돈을 주고 상품을 선택한 소비자에게 과오가 있다는 자기책임의 원칙 그늘에 숨으려고만 한다.

기술이 발전해나가면서 신종제품이 수시로 시장에 나온다. 별의별 업태가 다 등장한다. 그러나 규정집에 사례가 없으면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위험성이 예고되고 변태영업을 하는데도 걸러지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허술한 구조를 버리고 감시망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변태영업하는 업자와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출시하는 회사가 책임을 지도록 체제를 바꾸면 된다. 흡입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넣어 상품을 만들 경우 인체에 해가 없다는 증거를 갖추어야 한다는 포괄적인 규정이 있었다면 옥시가 PHMG라는 물질을 이용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각 부처가 폭탄돌리기하듯 규정에 없었다거나 관련법이 없었다고 떠넘기는 체제는 위기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업자에게 생명에 위험하지 않다는 입증책임을 부여하면 된다. 외국에서는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고치는 게 시스템 개혁이고 규제개혁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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