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뮤지컬 ‘잠자는…’은 2012년 영국에서 초연했다. 차이콥스키의 동명 원곡에 매튜 본이 재해석한 동화와 춤을 얹었다. 원곡의 템포와 구성도 손봤다. 원래 차이콥스키가 곡을 쓰고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한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고전발레의 교과서로 불린다. 정석에 충실한 모범생이다.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파격이나 활력은 덜하다. 매튜 본은 이를 180도 바꿨다. 무대에는 시종 에너지가 넘친다. 이야기는 잠시의 머뭇거림 없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현대적 감각과 동화·환상을 위화감 없이 훌륭히 섞은 점이 특히 돋보인다. 이야기는 1890년의 왕가에서 시작해 1910년대를 거쳐 현대로 흘러온다. 키스로 공주의 잠을 깨우는 왕자 대신 정원사가 등장한다. 원작과 달리 마녀의 아들이자 입체적인 악역인 카라독이 저주의 마법을 건다. 이렇게 재해석된 1막은 예상 가능한 범위지만, 2막에서는 통통 튀는 전개가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무대와 조명은 환상적 공간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한창 번성하는 왕가, 100여년의 잠으로 폐허가 된 정원 등은 지극히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깊고 아름다운 무대 색감은 내내 기억에 남는다. 말 한마디 없이 이야기를 전하는 무용수들의 뛰어난 연기와 춤도 볼거리다. 이들은 군데군데 유치하지 않으면서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오는 동작들을 넣어 친근감을 더한다. 다만 고전발레의 극도로 정제된 동작과 절제미, 우아한 선을 바라는 관객이라면 기대와 어긋날 수 있다. 다음달 3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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