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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베끼고 짜깁기하고…곳곳 졸속 집필 흔적

입력 : 2016-11-29 18:50:24 수정 : 2016-12-02 14: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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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박은식 ‘한국통사’ 서문/ 쉼표 하나 제외 완벽하게 일치/ 중·고 교과서, 같은 문장 반복/ 교과서 제작 기간 통상 2년/ 1년 만에 ‘뚝딱’… 문제 많아/“동일한 집필진 참여 탓”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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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공개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곳곳에서 ‘졸속 집필’의 흔적이 드러났다. 기존 검정교과서의 사료를 거의 그대로 베껴 쓰는가 하면, 중학교와 고교 교과서에 똑같은 구절이 반복되는 곳도 몇 군데 발견됐다. 통상 2년이 걸리는 교과서 집필을 1년이면 충분하다며 국정교과서 제작을 밀어붙여온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세계일보가 29일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기존 6종 검정교과서와 비교 분석한 결과, 고교 ‘한국사’ 231쪽에 사료로 실린 백암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미래엔 교과서 275쪽에 실린 것과 첫 문장 쉼표와 마지막 두 줄의 일부 표현을 제외하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국정역사교과서저지특별위원회 소속 한 위원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특위 1차 회의에 참석해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이재문 기자
한문으로 쓰인 ‘한국통사’는 필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국정교과서와 미래엔 교과서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는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라고 쓰인 부분이 다른 검정교과서엔 ‘옛사람이 이르기를… 그것은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라고 쓰였다. 이 구절을 쓸 때 원문대로 형체 대신 ‘형(形)’을, 정신 대신 ‘신(神)’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검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한 고교 교사는 “검정교과서가 문제투성이라며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얼마나 급했으면 사료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덕호 국편 편수실장은 “총 6줄짜리 사료에서 4줄이 같다고 해서 베껴 썼다고 하는 건 과하다”며 “그렇게 따지면 국정교과서뿐만 아니라 다른 검정교과서들도 유사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학교 ‘역사 2’와 고교 ‘한국사’의 현대사 부분에서는 일종의 ‘짜깁기’ 형식으로 같은 문장이 반복 사용됐다. ‘역사 2’ 141쪽에는 ‘일본에서 무상 3억 달러, 장기저리 차관 2억 달러, 그리고 3억 달러 이상의 민간 상업 차관이 들어왔다. 이 자금은 농림수산업 개발과 포항제철 건설 등에 투입되었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한국사’ 263쪽에는 ‘일본에서’가 ‘일본으로부터’로 바뀐 채 똑같은 서술이 이어진다.

같은 쪽의 ‘일본의 식민 지배 및 전쟁 동원에… 과거에 대한 반성과 청산은 미흡하였다’라는 구절도 두 교과서에 똑같이 실렸다. 이 밖에 ‘역사 2’ 141쪽과 ‘한국사’ 262쪽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서술, ‘역사 2’ 147쪽과 ‘한국사’ 270쪽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에서 같은 표현이 사용됐다.

박 편수실장은 “교과서는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서 풀어 쓰는 것이기 때문에 흡사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했지만 짧은 기간에 동일한 집필진 27명이 중·고교 교과서 집필에 모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난해 국정화 논란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65년사’에 국정교과서 편찬에 계획 및 위탁 3개월, 연구 및 집필 8개월, 심의 및 수정 11개월, 생산 및 공급 2개월 등 총 24개월이 소요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교육부와 국편은 이를 무시했다.

지난해 11월 3일 국정화 확정고시 이후 약 1년 만에 계획 및 위탁부터 심의 및 수정단계까지 온 국정교과서에서 베껴쓰기와 짜깁기 같은 문제점들이 발견됨에 따라 졸속 집필 논란과 함께 국정교과서 폐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역사콘텐츠학)는 “국정교과서는 졸속 집필로 드러난 문제점 말고도 비문이나 문체 등 지적사항이 많다”면서 “지금이라도 국정교과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루빨리 국정화를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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