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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마음의 차벽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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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6 00:42:20 수정 : 2016-12-06 00: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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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새로운 집회문화를 낳고 있다. 경찰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그중 하나다. 3일 6차 촛불집회에서도 광화문 인근의 차벽은 ‘꽃벽’으로 변했다. 참가자들은 의경들이 나중에 쉽게 떼도록 잘 떨어지는 재질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백합 같은 생화를 붙이는 이들도 있다.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은 차단하기와 밀어내기, 들어내기로 이뤄진다. 허가받지 않은 지역의 진출을 차단하다가 저지선을 넘을 경우 밀어내고, 상황에 따라 에워싸서 들어내는 식이다. 경찰기동대 버스를 띠로 연결하듯 붙여 만든 차벽은 통행 자체를 막는 것이어서 차단에 매우 유용하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집회시위 현장에서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다. 1999년 김대중정부가 무최루탄 원칙을 선언하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경찰은 여경 기동대로 질서유지선을 설치해 평화적인 집회를 유도했다. 이른바 ‘립스틱 라인’이었다

차벽이 등장한 건 2002년 12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미선·효순양 추모집회에서다. 경찰은 미 대사관 진입을 막기 위해 대사관 주변과 광화문 네거리 주변에 차벽을 설치해 톡톡히 효과를 봤다. 2005년 부산 에이펙(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에는 아예 컨테이너 박스를 겹겹이 쌓아올려 시위대 접근을 원천봉쇄했다. 2008년 미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도 컨테이너 박스와 차벽이 설치됐고, 집회참가자들은 이를 ‘명박산성’이라고 조롱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6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추모집회를 막기 위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싼 조치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그렇다고 모든 차벽 설치가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 헌재는 집회를 일절 금지하고 서울광장 통행조차 막는 극단적인 차벽을 문제 삼은 것이다.

청와대 100m 앞까지 진출한 6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갑자기 쓰러졌다. 환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이 옷을 벗어 덮어주며 다급히 “핫팩”을 외쳤다. 그러자 차벽 위에서 핫팩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경찰과 시민 간 마음의 차벽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차벽이 사라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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