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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뽑기'를 글로 배운 기자의 첫 도전기…"한 번만 더 하면"

입력 : 2017-02-21 07:13:09 수정 : 2017-02-21 07: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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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조명·시끄러운 음악에 '흐리멍덩'
뽑을 때마다 환호성…영웅이라도 된 듯 착각
3만4000원 쓰고, 철 지난 '가필드' 달랑 하나 뽑아
 "포켓몬 입양 성공."

중독의 한 가지 형태는 집착이다. 기자는 지금껏 인형 뽑기를 직접 해 본 적이 없다. 기자가 고등학생 때 한동안 인형 뽑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도 직접 하는 친구 옆에서 어설픈 훈수를 두거나 구경만 실컷 했다.

당시 도박처럼 사행심을 부추기는 일에 돈을 써 본 경험이 없거니와, 쓸 돈은 더더욱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주머니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기자는 새로운 유행에 둔감하다. 평소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미디어(SNS)에서 떠도는 유행에도 심드렁하던 기자는 얼마 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평소 허물없이 지낸 동료 기자가 보낸 문자였다. 문자와 함께 온 사진에는 '피카츄'와 '꼬부기' '파이리'가 나란히 서서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굳이 '인증사진'까지 보낼 필요가 있나. 이유가 있었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GO)'에서는 직접 만질 수 없는 실물이란다. 그는 포켓몬의 질감과 결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너스레도 잊지 않았다.

유행은 호들갑스럽다. 동료 기자는 단톡방에도 같은 사진을 올렸다. 단톡방에 이름이 걸린 기자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칭송'하는 것은 물론이고, 너도나도 인형 뽑기에 나서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 속 인형들은 제법 봉제선이 곱고, 잘 만든 듯했다. 한참이나 노란불이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분명히 대세는 대세인가보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전화를 걸었다. 인형 뽑기 놀이가 왜 다시 유행하는지 궁금했다. TV나 신문에 자주 이름을 올린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대중문화 평론가 등에게 물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제 불황이 어쩌고, 탕진이 저쩌고….

대답은 비슷했고, 별 볼 일 없었다.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직접 인형 뽑기에 나서기로 했다. 인형 뽑기를 글로 배운 기자의 첫 도전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집착의 서막이 올랐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다. 인터넷 검색 창을 띄웠다. 자신이 직접 뽑은 인형을 자랑하는 '인증사진'과 이른바 '고수'들의 무용담이나 비법, 시연 영상까지 쉽게 볼 수 있었다. 무림의 고수들이 이렇게 많다니. 새삼 놀랍다.

임신한 아내의 타박에도 열 일 제쳐놓고, 퇴근 후 틈틈이 인터넷을 뒤적였다. 긁어모은 고수들의 비법을 정리하면 뽑기 전 기계 특성 파악하기(집게 힘 분석), 입구 앞에 인형 탑 쌓기, 몸통보다 머리 공략, 레버 조작으로 집게 방향 바꾸기, 고리나 꼬리 달린 인형 공략 등이다.

지난 9일 인형 뽑기를 글로 배운 지 꼭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전날 밤까지 손 놓지 않았던 비법을 앵무새처럼 되뇌며 출전 결의를 다졌다.

홍대 앞 한 인형 뽑기 방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한마디로 정신을 쏙 빼놓았다.

실전에 돌입했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20초 안에 승부를 내야 하기에. 굳은 손으로 1만 원을 지폐 투입구에 넣었다. 기본 10회에 서비스 2회가 추가됐다.

첫 공략 대상은 배운 대로 몸통보다 머리가 훨씬 크고 꼬리까지 달린 피카츄. 레버를 조정해 집게를 피카츄 머리 위에 올려놨다. 머리를 공략하기 위해 레버를 마구 흔들어 집계 방향을 바꾼 뒤 신중하게 내림 버튼을 눌렀다.

흔들흔들 위태롭게 내려간 집게가 피카츄 머리를 집어삼킬 듯 들어 올렸다. 흠칫 놀라 기쁨도 잠시. 예상한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떨어졌다.

심기일전. 이번에는 머리와 겨드랑이 사이로 집게를 넣었다. 잠시 들어 올리나 싶더니 입구 앞에서 다른 인형들 사이를 나뒹굴었다.

배움이 부족했나. 12회 시도는 실패를 반복하다 허무하게 끝났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시선을 피하더니 하나둘 사라졌다. 동행한 사진부 선배 기자도 실망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애꿎은 카메라만 연신 만지작거렸다. 불과 5분도 안 돼 1만원을 탕진했다. 이래서 인형 뽑기를 흔한 말로 '탕진잼'이라고 하나.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인형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처량했던 탓일까.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돼요"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들 손에는 피카츄와 잠만보가 들려있었다.

"분명 한 번만 더 하면 뽑을 수 있는데…."

온통 머릿속은 이 생각뿐이었다. 뽑은 인형을 자랑하듯 안거나 가방에 매다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아니 부러웠다. 인형을 뽑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환호와 시선은 집착을 부추겼다.

"에라, 모르겠다."

흐리멍덩해졌다. 오기가 발동했다. 뽑을 때까지 도전키로 했다. 재미 삼아 시작한 체험이 도전으로 바뀌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계를 바꿔 도전했지만, 실패가 계속됐다. 고수들에게 배운 대로 아무리 해도 입구 앞에 인형 탑 쌓기까지만 성공했다. 인형들이 바닥에 나뒹굴기 일쑤였다. 딱 거기까지였다.

기계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친절한 안내도, 정품 인형만 취급한다는 아르바이트생의 설명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미 예상 한도를 훌쩍 넘어섰지만, 딱 한 번만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대체 돈을 얼마나 썼을까.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손맛'을 봤다. 집게가 어렵사리 들어 올린 가필드 인형이 입구로 떨어졌을 때,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무려 3만4000원이나 쓰고 뽑은 인형인데 오죽할까. 짜릿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 돈이면 인형 2개는 사겠는데…."

사진부 선배 기자의 말마따나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애초부터 떠들썩하게 도전할 사안이 아니었다. 승자의 포효는 오래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처음부터 후회될 지경이었다. 몇 초 남짓한 짧은 쾌감을 위해 3만4000원이나 쓰다니.

아내에게 무용담을 털어놨다. 꼼꼼하고 절약이 몸에 밴 아내가 '주먹 감자'를 내질렀다. 글로 배운 인형 뽑기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런데도 인형 뽑기가 자꾸 생각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사족(蛇足)이기는 하나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배운 것'임을 상기시켜드리는 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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