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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 적정 규모 놓고 힘겨루기… 청년 변호사들 유탄 [심층기획 - 변시 합격자 연수 제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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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11 07:00:00 수정 : 2021-05-11 08: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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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미아’ 된 예비 변호사들
변시 합격자수 법무부·변협 갈등속
변협, 연수정원 789명→200명 제한
연수 마쳐야 정식 변호사로 취업
“치킨게임에 애꿎은 합격자들 피해”

2021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1706명
한해 500명 가량 연수 기회 사라질 판
변협 “합격자 수 많아져 감당 못해
국고 보조금도 줄어 비용 부담 커”
법무부 “연수 취지 어긋나” 재논의
로스쿨 교육 개편 등 대책 마련해야

“합격자 정원을 둘러싼 법무부와 변호사 업계의 다툼, 부실한 로스쿨 교육의 문제가 10기 합격자 연수과정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연수 기회 제한은 열악한 청년 변호사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결정입니다.”

 

3년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과정을 마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30대 후반의 A씨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의 실무연수 추가 합격으로 간신히 연수 기회를 얻었다며 안도의 한숨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했다. 일반 직장인이었던 A씨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늦깎이로 사법시험에 도전하다 지방의 한 로스쿨을 졸업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공부라 쉽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변호사시험을 한번에 합격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대한변협이 변호사 실무연수 대상 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하면서 연수 기회를 잃을 뻔했다. 일정 기간 연수를 마치지 못하면 정식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다.

 

변시에 합격해도 6개월 이상 로펌 등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일하거나 대한변협이 주관하는 의무연수를 마쳐야 정식 변호사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A씨는 10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나이도 많은 지방대 로스쿨 출신은 연수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30건 정도 이력서를 제출하면 면접 기회는 3∼5회 정도 얻는 것이 고작”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대형 로펌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변협 연수를 못 받는 합격자 중에서는 서초·교대역 사이의 소규모 법률사무소 등에서 월 150만∼200만원의 수습기간을 감내하면서라도 실무연수를 채우려 원서 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사법시험 낭인’을 막고 국민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로스쿨과 변시 제도가 도입된 후 수면 아래 있던 이른바 ‘미아 합격자’ 문제가 변시 10회째를 맞아 터져나왔다. 2011년 제1회 변시에서 1451명의 합격자가 나온 이후 해마다 합격자 적정 규모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법무부와 변호사업계, 로스쿨의 갈등에 예비 청년 변호사들이 유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변시 합격자 상당수의 실무연수를 맡고 있는 대한변협이 교육의 질 개선과 정부의 예산 삭감 등을 이유로 연수 정원을 대폭 줄이면서 연수처를 제때 찾지 못한 미아 합격자 문제가 본격화했다. 이런 변시 합격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제대로 교육은 안 시킨 채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블랙펌’(블랙과 로펌의 합성어·악덕 법률사무소)도 적지 않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연수생을 볼모 삼은 변호사 합격자 규모 자체의 논란도 문제이지만 로스쿨 교육과 합격자 대상 연수의 내실화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변호사가 부실하게 양성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법률서비스 이용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한변협, “연수 정원 200명 제한”이 촉발한 ‘미아 합격자’… 법무부, “연수 인원 재논의”

 

변시 합격자의 연수 공백 우려는 대한변협이 지난달 제10회 변시 합격자 연수 신청 안내를 공지하며 “합격자 연수의 내실화를 위해 연수 인원을 200명으로 정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공지하면서 비롯됐다. 10회째인 올해 변시 합격자는 1706명이다. 변시 합격자의 실무연수를 담당해온 대한변협은 그동안 △강의교육 3개월 △모의기록을 검토하는 1개월의 소규모 분반토의 △법률사무를 체험할 수 있는 2개월간의 현장연수 과정으로 이뤄진 6개월 교육을 진행했다. 중복 지원과 중도 이탈을 고려하더라도 한 해 500명 가까운 연수생을 받았던 대한변협의 연수 기회가 사라지자 합격자들은 “사다리 끊기”라고 반발했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789명의 신청을 받아 실무연수를 진행했다.

변시 합격자에게 변협 실무연수는 ‘검·클·빅(검사·로클럭·대형 로펌)’을 제외하고 안정적으로 연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변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법원의 재판연구원(로클럭) 300명과 검사 70명 정도, 대형 로펌 200∼300명, 기타 법률사무종사기관 채용을 제외하면 대한변협 연수는 합격자들이 실무를 익히면서 동시에 법률사무소 수습지원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다.

 

대한변협은 연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연수생 규모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연수하려면 5년차 이상 변호사 1명이 연수생 1명의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에는 합격자가 너무 늘어 2년차 변호사에게 여러 명이 연수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제대로 된 연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축소 배경을 밝혔다. 대한변협은 법무부가 지원해온 실무연수 국고 보조금이 지난해부터 삭감되면서 발생한 비용 부담도 연수생 인원을 줄인 배경이라고 꼽았다.

법무부는 “연수인원을 제한하는 것은 대한변협 연수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며 연수인원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변협은 이에 지난 3일 “변시 합격자 실무수습(실무연수)제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와 교육부, 변협, 로스쿨협의회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변시 합격자 수를 놓고 줄여야 한다는 대한변협과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양쪽을 조율하는 법무부 사이의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가운데 애꿎은 합격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연수 학점제’부터 사법연수원 제도 부활까지 각양각색

 

적정 규모의 실무연수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미아 합격자 문제는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변시 합격자 C씨는 “(변협 연수조차 받지 못하면) 연수기간에 을이 될 수밖에 없는 합격자의 처지를 악용해 임금을 착취하는 ‘블랙펌’이라도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학계에서는 예비 변호사의 실무능력 함양에 초점을 맞춘 로스쿨 교육과 변시 제도 개편을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변호사 양성·연수 과정의 내실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주체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건국대 한상희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대한변협을 중심으로 한 연수 체제에 방점을 찍었다. 한 교수는 “변호사 양성 과정은 기본적으로 대한변협과 로펌, 로스쿨이 분담하지만 대한변협이 변시 합격자를 연수하는 법률사무기관에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균관대 한애라 교수(〃)는 ‘실무 연수 학점제’ 도입을 주장하며 “변호사로서 꼭 알아야 할 실무 내용은 모든 변시 합격자가 온라인으로 수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교수(〃)는 “3년의 로스쿨 과정으로는 변시를 칠 능력 양성조차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2학년 2학기 때 개설되는 각종 실무교육 수업은 성적이 괜찮은 학생들에게 권하지 변시 준비에도 급급한 학생들에게는 권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사법연수원에서 6개월이든 1년이든 나눠서 (제대로) 교육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창훈·이지안·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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