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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70대 노배우에 반한 골든글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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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20 23:10:18 수정 : 2022-01-20 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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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윤여정이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오영수가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시아인에 유난히 인색했던 시상식이지만 오랜 관록의 배우에겐 그동안 굳게 닫혔던 빗장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미국 유수의 시상식에서 수상했고, 그 업적을 70세가 넘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뤄냈다. 요란하고 화려한 수상소감 대신 나이에 걸맞은 겸손과 절제의 표현으로 많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수상 전까지만 해도 ‘톱배우’로 주목받은 인물이 아니었고, 배역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고령의 나이 때문이었다. 연극을 주로 했던 오영수의 영화·방송 작품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선덕여왕’, ‘도승’ 등에서 모두 ‘승려’ 역할을 맡았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국내 방송 활동이 많았던 다른 노배우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부분 주인공의 할아버지, 할머니 등 역할이 한정됐다.

방송 관계자들은 “국내 프로그램들이 해외에 비해 타깃 연령층이 전체적으로 낮다”며 “방송을 통틀어 가요무대가 사실상 가장 고령층 대상이다. 아니면 일일극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역이 전부”라고 꼬집었다. 가끔, 아주 가끔, 드라마 ‘나빌레라’ 같은 작품이 나오면 언론이 ‘실버 파워’를 떠드는 것도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들이 주인공이 된 배역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할아버지니까 할아버지 역을 시키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년의 배우가 아버지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는 일은 아주 다양하다. 연애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역의 다양성에 대한 얘기라는 의미다.

나이 든 사람이 주연이 되면 시청률이 낮을 것이라는 것도 편견이거나 핑계다. 해외의 경우를 보자. 로버트 드 니로, 알파치노, 사무엘 잭슨 등은 70대에 블랙코미디와 범죄물 등을 가리지 않는다. 여배우도 마찬가지다. 이제 70줄에 접어든 메릴 스트리프는 다양한 장르에서 대통령, 기자 등을 맡았다. 이런 작품은 이들의 ‘티켓파워’에 오히려 기대고 있다. 노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코미디와 범죄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녹아든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도 오영수가 아니었다면 “우린 깐부잖아”,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등의 대사가 빛을 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10년 전이라면 “돈 많은 할리우드 영화와 우리는 다르다”며 먼 나라 얘기로 치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지난해 오징어 게임과 지옥, 고요의 바다 등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낸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의 틀을 다 벗어났다. 백마 탄 왕자나 재벌 집 아들은 나오지도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SF는 무리라던 자조가 지배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장르적으로 한 걸음 나아갔으니, 이제 연령의 틀을 깰 때가 왔다. 그렇지 않다면 골든글로브 수상 소식이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쯤에, 이런 ‘보물’ 같은 존재들이 또다시 승려 역과 할머니 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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