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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여명 못 떠받치는 연금… 필사적 저항에도 개혁 불가피 [심층기획 - 연금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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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29 11:00:00 수정 : 2023-01-29 18: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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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로 부상

獨·伊·日 등 개혁 시도했다 정권 잃어
佛 대규모 시위 등 반대 70% 달해도
마크롱 첫 시도 실패 딛고 개혁 강행

2020년 중위연령 佛 41세·韓 43세
1970년 56세던 평균수명은 72세로
노인부양비 급증 문제 세계가 직면

재정 따라 수급액 조정 ‘자동조절장치’
OECD 국가 대부분 공적연금에 도입
사회적 합의 통해 갈등 최소화해야

각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연금 개혁은 입에 쓴 약이다. 27일 발표된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시산 결과 한국의 기금 소진 예상 시점이 2055년으로 4차 재정추계 때보다 2년 앞당겨진 것처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각국 연금 재정이 악화할 것이 뻔히 예상되지만, 당장의 개혁은 정권의 안위를 흔든다.

 

연금 개혁의 주요 방안인 △보험료 인상 △증세 △연금 수령액 인하 △정년 연장 모두 거부감이 크고, 그래도 강행했다가는 선거에서 심판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개혁안은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올려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릴=신화연합뉴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로마노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등이 연금 개혁을 추진하다 중도 낙마했거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연금 수령 나이를 65세에서 67세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70%에서 40%로 줄이면서 보험료 부담은 22%까지 높이는 연금 개혁을 노동 개혁과 동시 추진해 고실업·저성장의 ‘독일병(病)’을 치유하는 토대를 닦았지만, 그런 그도 노동자층의 민심을 잃으며 2005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의 기독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가깝게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 2019년 총파업과 고속도로 점거 등의 거센 저항을 뚫고 연금 수령 나이를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연금 개혁에 겨우 성공했다. 2018년에는 니카라과가 보험료를 올리고 수령액을 줄이려다 최소 27명이 숨지는 유혈 충돌이 발생해 개혁을 포기했다. 네덜란드도 연금 수령 나이를 2021년 67세로 올리려던 계획을 2024년으로 연기했다.

 

그러다 보니 연금 개혁은 차기 정권에 미루는 ‘폭탄 돌리기’가 만연한다. 미국은 지난해 사회보장신탁 연례 보고서에서 이대로 변화가 없다면 2035년 사회보장연금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지만, 11·8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이 연금 수령 나이를 현행 67세에서 70세로 늦추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 전까지 뚜렷한 입법 시도가 없었다.

 

◆연금 개혁에 정치적 유산 건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첫 임기 때 연금 개혁을 시도했다가 뜨겁게 덴 경험이 있다. 2019년 직군별로 42개에 달하는 연금 제도를 단일화하고 수령 시기도 늦춰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에 착수하자 노동자들은 대대적 파업으로 응수했다. 유류세 인상안이 촉발한 ‘노란 조끼’ 시위까지 가세하면서 당시 프랑스는 교통·의료·교육 현장이 마비되는 대혼란을 겪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이 시작되자 마크롱 대통령은 결국 모든 논의를 중단했다. 현지 언론과 비평가들은 은퇴, 연금을 뜻하는 프랑스어(retraite)에 퇴각의 의미도 있음을 거론하며 마크롱의 실패를 비꼬았다.

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파리 외곽 소도시 코르베유에손에 있는 병원에서 의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신년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크롱정부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다시 연금 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년 62세→64세 연장, 기여 기간 42년→43년 확대가 핵심이다. 유럽연합(EU) 평균보다 남성은 2년, 여성은 1년 빠른 정년만 손질해 2030년까지 180억유로(약 24조원)를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증세와 연금 수령액 인하 가능성은 배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대선 당시 정년 65세 연장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만큼 개혁 추진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는 입장이다.

 

노동계 등은 극우 집권을 저지하려 했을 뿐 연금 개혁에 동의해서 마크롱을 뽑은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좌파 정당들은 오히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시절처럼 정년 60세 환원과 이를 위한 증세 필요성을 역설한다.

 

연금 개혁안 발표 전후 프랑스 내 반대 여론은 70% 안팎으로 여전히 높다. 노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만 쥐어짜는 부당한 개혁”이라고 반발하고, 기업은 “나이 든 직원에게 계속 많은 월급을 주느라 청년을 못 뽑는다”는 볼멘소리를 한다. 온건 성향인 노동민주동맹(CFDT)까지 합세해 12년 만에 주요 8개 노조가 모두 동참한 19일 총파업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112만명이 참여했다.

자신의 두 번째 임기가 수렁에 빠질 수 있는데도 마크롱 대통령은 뚝심 있게 개혁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외신들도 개혁의 당위성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의 폴 테일러는 “프랑스의 연금 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9%로 EU 평균인 13.6%보다 높다”며 “유럽에서 덴마크 다음으로 세금이 많은 프랑스가 증세를 하는 건 비현실적이고, 인기는 없지만 정치적으로 필요한 입장을 마크롱은 취했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좋든 싫든, 프랑스는 마크롱의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직면한 문제

 

연금을 둘러싼 상황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공적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부터 시작해 재정 건전성, 연금 보험료율, 기여기간, 수령 나이, 노인 빈곤층에 대한 보완장치 등 세부사항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기대수명 연장으로 생산가능인구 대비 퇴직노인 인구의 비율, 즉 노인부양비가 계속 증가한다는 점은 거의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중위연령(총인구를 나이순으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나이)은 1970년 20대에서 2020년 30대로 올라갔다. 프랑스(41세)와 한국(43세), 이탈리아(46세), 일본(48세)이 특히 높다. 2070년이면 한국의 중위연령은 61세, 중국은 55세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유엔은 또 2070년까지 한국, 중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약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인류의 평균수명은 1970년 56세에서 2020년 72세로 늘었다. 연금 수령 기간을 가늠할 수 있는 ‘65세 이상 인구의 기대여명’은 13년에서 17년으로 4년 증가했다. 기대여명은 해당 연령의 인간이 앞으로 살 것으로 추정되는 평균 생존연수다. 중국(18년), 한국(22년), 일본(23년)은 65세 이상 기대여명이 세계 평균보다 길다.

 

이는 과거에 설계된 연금 제도를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재정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의미다.

 

2000년대 초반 슈뢰더의 강력한 개혁이 있었던 독일에서조차 향후 5년 내 추가 개혁 없이는 연금 재정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지프 차미 전 유엔 인구국장은 미국 독립언론 유라시아리뷰를 통해 “연금 개혁 방안 중에서는 정년 연장이 거부감이 가장 덜할 것”이라며 “정년 연장은 노동인구 규모를 확대하면서 은퇴 전 저축의 기회를 추가 제공하고, 연금 재정 고갈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은 1999년 인구통계학적, 경제·재정적 지표 변화와 연계해 연금 재정에 따라 수급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절장치를 공적연금에 도입했다. 자동조절장치는 이후 다른 나라들도 받아들여 현재 독일, 일본, 핀란드, 캐나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약 3분의 2가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연금 개혁이 필수고 저항은 필연이라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연구원이 2019년 발간한 ‘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에 대한 해외사례 연구’에 따르면 정부·여당의 힘이 강력한 일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연합뉴스

슈뢰더의 경우 첫 번째 개혁 때 보수 정당이 반대하자 노조를 끌어들여 대타협을 이뤄냈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야권과 노조가 모두 반대하자 전문가위원회를 활용해 개혁에 성공했다. 1998년 주요 5개 정당 간 연금제도 개선 합의를 통해 큰 홍역 없이 연금 개혁을 이룬 스웨덴도 모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2002년 노동당 정부가 시작한 연금 개혁을 2012년 보수·자유당 연립정부까지 이어지며 큰 틀의 변화 없이 완수한 영국 사례도 주목받는다. 영국은 정부·재계·노동계 인사가 각 1명씩 참여한 초당적 협의를 바탕으로 인구 고령화, 연금과 사적 저축의 실태, 노년 빈곤 전망 등 관련 정보를 대중에 투명하게 공개하며 대국민 토론회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연금 개혁에 관여한 니컬러스 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 교수는 바람직한 연금 개혁의 방향성에 대해 “위험에 대한 노출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해야 하고,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은퇴가 임박한 노동자에게 충격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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