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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도 무기다”… 전쟁터 누비는 21세기 기병, ‘테크니컬’ 위력 커진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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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29 06:00:00 수정 : 2023-01-29 10: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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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트럭이나 사륜구동차량에 중화기를 탑재한 테크니컬(Technical)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벌어진 무력충돌이나 특수전 등에서 주로 활용됐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정규군이 전면전에서 테크니컬을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테크니컬에 탑승, 북부 벨라루스와의 국경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규모 화력 대결이 펼쳐지는 전면전에서는 전차와 장갑차도 파괴되기 쉽다. 험하고 거친 방어력과 공격력이 매우 약한 테크니컬이 활동할 공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 기존 인식이었다.

 

하지만 군용차량으로는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자동차 산업 기술이 크게 발달하면서 민간 트럭과 사륜구동차도 전쟁터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수준의 성능을 확보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 민간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고, 다양한 무기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테크니컬의 활용도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종류의 작전에 투입 가능

 

전쟁 전부터 기갑장비가 부족했던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2월 러시아 침공 직후부터 테크니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도시의 작은 공장에서도 제작이 가능하고, 전문적인 운용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지 않아 신속한 배치가 가능한 테크니컬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동부 돈바스의 바흐무트 인근에서 트럭에 탑재된 대공포로 경계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실제로 개전 이후 몇 주만에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지역에선 민간 픽업 트럭과 사륜구동차에 중기관총, 다연장로켓, 대공포, 대전차미사일 등을 탑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전에도 상당한 양의 민간 차량이 있었지만, 주로 일반 승용차나 벤이었다. 도로가 파괴된 상황에서도 거뜬히 주행이 가능한 픽업 트럭이나 사륜구동차의 숫자는 제한적이었고, 우크라이나군의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를 보충한 것이 해외에서 기증한 물량이다. 각국 정부와 민간 단체는 우크라이나군에 서방에서 만들어진 픽업 트럭과 사륜구동차량를 대거 보냈다. 

 

전장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살상용 무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크라이나를 도우면서도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이같은 추세를 더욱 강화했다.

 

국내외에서 확보한 차량을 테크니컬로 개조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 맞설 기동력과 공격력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 중화기를 탑재하지 않은 것은 병력이나 보급물자를 수송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스타링크로 실시간 교신과 정보공유를 진행하며 러시아군의 위치를 파악한 우크라이나군은 테크니컬을 이용해 러시아군을 기습한 뒤 신속하게 후퇴했다.

 

러시아 군인이 테크니컬에 거치된 기관총을 잡은 채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전 인근에서 경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에서 화력전에 나섰을 때는 다연장로켓을 탑재한 테크니컬이 등장, 러시아군에 로켓탄을 퍼붓고 신속하게 이탈하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우크라이나군이 동북부 하르키우 등에서 반격에 나섰을 때,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에서 지원받은 험비 전술차량과 M113 장갑차 외에도 테크니컬을 투입해 보병을 수송했다. 

 

러시아군이 이란산 샤헤드-136 자폭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지역을 공습하자 중기관총을 테크니컬을 중심으로 ‘드론 사냥꾼 부대’를 조직, 방공작전에 투입했다. 비포장도로에서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기동력에 힘입어 ‘움직이는 포대’ 역할을 한 셈이다. 

 

러시아군도 전쟁 초기부터 픽업 트럭을 개조한 테크니컬을 사용해왔다.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빼앗은 민간 차량에 ‘Z’ 표식을 그리고 중화기를 설치한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어떤 차량은 별다른 개조 없이 쓰이다가 버려진 것이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개전 직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실시한 대부분의 작전에 테크니컬에 참가한 셈이다. 국가간 대규모 전면전에서 테크니컬이 광범위하게 쓰인 것은 상당히 특이한 부분이다.

 

◆저강도 분쟁 지역서도 활용

 

테크니컬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개발도상국의 무력 분쟁에서 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차와 장갑차를 구입하기 힘든 개발도상국 정부군과 무장세력은 값싸고 구하기 쉬운 픽업 트럭을 무장시켜 전투에 투입했다. 때로는 화력지원차량으로, 어떤 경우에는 병력수송용으로도 쓰일 수 있는 테크니컬은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리비아 무장세력들이 운용중인 테크니컬들이 도로에 정차해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테크니컬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시기는 1986~1987년 리비아와 차드의 국경 분쟁에서다. 전력에서 열세였던 차드군은 로켓포 등을 실은 도요타 랜드크루저로 리비아군을 기습, 승리를 거뒀다. 

 

1990년대 초 소말리아 내전에서 미군은 중기관총을 탑재한 테크니컬을 앞세운 반군에 밀려 철수해야 했다. 테크니컬로 기동성과 화력을 갖춘 반군이 미군 특수전부대를 공격했던 모습은 2001년 개봉한 영화 ‘블랙호크 다운’에 잘 묘사되어 있다. 

 

예멘 무장대원들이 테크니컬에 탑승한 채 도로에서 경계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후 테크니컬은 이라크·아프간 전쟁과 리비아·예멘 내전,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시리아 내전 등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리비아에선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카다피군의 러시아산 BMP-1 보병전투차에서 73㎜ 포탑을 회수해 트럭에 결합했다. Su-25 공격기나 Mi-8 헬기에 장착됐던 로켓발사기를 트럭에 이같은 방식은 카다피군에 비해 화력에서 열세였던 반군이 큰 도움이 됐다.

 

시리아에선 박물관에 있던 구식 대포를 탑재해 건물을 포격하는 테크니컬이 등장했다. 대포는 구식이었지만 건물을 파괴하는데는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고, 트럭은 포격시 발생하는 반동을 견뎌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과 특수전부대도 테크니컬을 사용했다. 

 

이들은 주로 일본산 도요타 하이럭스(Hilux)에 무전기와 연막탄, 방탄유리 등을 추가한 테크니컬을 활용해 작전을 수행했다. 

 

하이럭스는 현지에서 널리 쓰이고 있어 주민의 눈에 띄지 않고 이동이 가능했다. 멀리서 보면 미군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정체가 사전에 포착될 위험을 피하면서 목표지점에 접근할 수 있었다. 높은 내구성을 지니면서도 운전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아프간 탈레반 대원들이 테크니컬에 탑승한 채 칸다하르 시가지를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당시 미군은 현지 정부군과 경찰에 상당한 수량의 픽업 트럭과 사륜구동차를 공급했다. 이 차량들은 병력 및 물자 수송, 순찰 외에도 중화기를 탑재한 테크니컬로 개조되어 전투에 투입됐다. 이들 중 일부는 IS나 탈레반에 의해 노획되어 재활용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민간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대부분의 민간 트럭과 사륜구동차들이 테크니컬로 개조되어 쓰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에 투입되는 모든 병사들에게 장갑차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방 정부와 비정부기구(NGO)들이 대량으로 지원하는 민간 차량들을 개조한 테크니컬은 나쁘지 않은 대안이 된다. 

 

미국이 브래들리 보병전투차와 스트라이커 장갑차 지원 방침을 밝혔지만, 현지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테크니컬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계속 운용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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