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한 ‘라인야후’ 사태가 한·일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국내에선 검색 포털시장의 ‘공룡’이라며 정치권과 언론, 이용자의 감시와 질타를 한 몸에 받아 왔지만 네이버가 13년간 공들인 끝에 일본 국민 9600만명이 사용하게 된 메신저를, 한국 정보기술(IT) 기업 최초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사업의 경영권을 일본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가 알려진 5월 첫째 주 라인 애플리케이션(앱) 신규 설치 건수는 지난해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 8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자 국내에서 유니클로 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됐던 상황이 재연되는 듯하다.
지난해 11월 한국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 일본 라인 이용자의 개인정보 55만건이 유출된 것을 빌미로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한 것에 대해 일본 언론조차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네이버와 지분을 50%씩 나눠 가진 일본 소프트뱅크는 일본 정부를 등에 업고 네이버에 지분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7월 네이버의 인공지능(AI) 기술인 ‘하이퍼클로바X’ 대신 오픈AI와 사용 계약을 체결하며 네이버로부터 ‘기술 독립’을 공식화했다.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네이버 밀어내기’가 얼마나 치밀하게 기획된 것인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안일하고 미온적이었다.
일본 정부가 3월5일과 4월16일 두 차례에 걸쳐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 행정지도를 내렸는데도 정부는 이달 10일에야 공식 반응을 내놨다. 그마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서서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에 지분 매각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우리 기업에 지분 매각 압박으로 인식되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강탈하려는 의도가 너무나 명백한데도 ‘압박으로 인식되는 점’이라고 한 것은 우리가 주관적인 해석으로 과민 반응을 하고 있다는 빌미를 줄 수 있는 표현이다.
반일 정서가 끓어오르자 13일 대통령실에서 직접 나섰지만, 역시나 논란을 자초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네이버가 좀 더 진실되고 구체적인 입장을 주는 것이 정부가 네이버를 돕는 데에 최대한 유리할 것”이라며 네이버에 구체적 입장을 내놓으라고 했다. 네이버와 긴밀히 소통해 왔다면서 공개적으로 네이버에게 입장을 표명하라니.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을 네이버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비친다. 대통령실의 이런 발언은 ‘네이버가 라인 지분을 매각하고 싶어 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져 혼란을 부추겼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우리 기업을 상대로 협공을 펼칠 때 야당은 정부 공격에만 열을 올리고 정부는 우리 기업에 화살을 돌리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이 14일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에 네이버의 지분 매각과 관련한 내용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분 매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일본 정부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경제안보의 시대, 제2의 라인사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기술주권을 지키기 위한 정부와 네이버의 긴밀한 공조, 초당적 협력이 절실한 이유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