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각 1석에 합의 1석’이 관행
민주, 의석수 앞세워 2석 탐내면
‘다수의 횡포’ 비판 면치 못할 것
오는 10월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의 임기가 끝난다. 모두 2018년 국회에서 선출된 이들이다. 헌재소장을 겸하는 이종석 재판관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김기영·이영진 재판관은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각각 추천했다. 그런데 재판관 인선 당시만 해도 의석수로 제3당이자 원내교섭단체이던 바른미래당이 공중분해해 사라졌다. 이제 이영진 재판관 후임자 추천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헌재가 발족한 1988년 국회에는 교섭단체가 4개 있었다. 의석순으로 여당인 민정당, 김대중(DJ) 총재의 평민당, 김영삼(YS) 총재의 민주당, 김종필(JP) 총재의 공화당이다. 1∼3당인 민정당, 평민당, 민주당이 1명씩 추천해 국회 몫 재판관 3자리를 채웠다. JP가 반발했으나 여당은 물론 DJ와 YS도 ‘의석수대로’라는 주장을 밀어붙였다. 공화당의 몽니에 국회의 재판관 선출이 늦어져 초대 헌재소장 등 재판관 9명 전원의 임명 절차가 지연되기도 했다.
원내 3당이 재판관 추천권을 행사한 사례는 2018년과 1988년 이렇게 2차례가 전부다. 나머지 기간은 어땠나.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남은 1명은 여야 합의로 정했다. 역대 국회 선출 재판관 중 김효종(2000∼2006년), 목영준(2006∼2012년), 강일원(2012∼2018년) 3인이 여당과 야당의 타협을 통해 헌재에 입성했다. 강 전 재판관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주심을 맡아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비단 그뿐 아니고 3인 모두가 임기 내내 민감한 사건 재판에서 특정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으며 공정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한 것으로 기억한다.
국회 몫 재판관 3명 가운데 2명을 원내 과반 다수당이 차지한 전례가 없지는 않다. YS정부 시절인 1994년 여당이던 민자당이 그랬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원래 덩치가 크기도 했지만 1992년 대선 후 군소 야당과 무소속 의원을 대거 영입해 몸집을 불렸다. “원내 의석 분포를 감안해 우리 당이 재판관 2명을 추천하는 것이 맞다”고 야당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중 1명은 여야 합의로 뽑자”는 야당 제안은 묵살됐다. 당시 야당은 ‘여당 총재인 대통령이 재판관 3명을 지명하는 마당에 여당까지 2명을 보태면 전체 재판관 9명의 과반이 사실상 여권 인사가 된다’는 논리를 들어 강력히 항의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결국 이 주장이 훗날 재평가를 받아 국회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개원을 앞둔 22대 국회는 1당인 민주당(175석)과 2당인 국민의힘(108석)의 양당 구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대표인 조국혁신당(12석)이 3당에 해당하나 교섭단체 구성 요건(20석)에는 한참 못 미친다. 조국당이 원내 3당에 재판관 추천권이 주어진 1988년 및 2018년의 사례를 들어 “이영진 재판관 후임 후보자를 우리가 추천하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안 될 일이다. 교섭단체가 아닌 정당이 재판관을 추천한 전례는 없다. 더욱이 조국당은 대표는 물론 원내대표조차 비리 혐의로 하급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피고인 신분 아닌가. 이런 당이 최고 사법기관 구성을 주도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처사다.
민주당이 재판관 2명을 가져가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175석 대 108석의 격차를 근거로 ‘재판관 추천권도 2대 1로 나누자’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벌써 “민주당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과반 의석을 준 민심”이라는 식으로 4·10 총선 민의를 왜곡하고 있지 않나. 1994년 민자당이 편 것과 같은 궤변일 뿐이다. 민주당이 그렇게 한다면 ‘다수의 횡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헌정사에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2000년 이후 양당제가 유지된 기간 국회 몫 재판관 선출의 원칙은 여당 1석, 야당 1석, 그리고 여야 합의 1석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여야 협치의 기회로 삼아 머리를 맞대고 훌륭한 재판관 후보자를 고를 것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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