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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사이버세상 '주작글' 난무… 재미는 어디가고 혐오만

입력 : 2016-10-03 19:01:42 수정 : 2016-10-04 16: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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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조작글 무분별 확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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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 이거 주작(조작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 아님.’

서울에 사는 대학생 김모(24)씨는 강의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 ‘취미생활’에 몰두하곤 한다. 김씨의 취미는 인터넷에서 이른바 ‘썰’(이야기)을 푸는 것. 김씨는 한두 군데 온라인 커뮤니티에 1주일에 서너 건의 글을 올린 뒤 네티즌 반응을 감상하는 데 맛을 들였다. 대학·군대 이야기나 연애담 등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나 풍문을 재구성한 글이다.

김씨는 “온라인에선 글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며 “내가 쓴 글이 여러 차례 공유되거나 네티즌들이 댓글로 ‘불꽃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면 묘한 짜릿함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세상에 난무하는 각종 썰 중에는 네티즌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어낸 글이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남녀갈등이 심화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유도하기 위해 조작 글을 퍼뜨리는 경우도 많다는 분석이다.

3일 최근 유행하는 이른바 ‘주작기’ 앱으로 메신저 채팅창을 만드는 모습. 채팅할 인원을 생성한 뒤 글을 쓸 수 있고 날짜를 바꾸거나 입·퇴장, 이모티콘 등을 설정해 마치 실제 메신저 화면처럼 구성할 수 있다.
3일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보면 메신저 대화를 조작할 수 있는 이른바 ‘주작기’ 앱 가운데 하나는 사용자가 100만명이 넘는다. 주작기 앱을 써 봤다는 직장인 오모(29)씨는 “직접 경험했던 일을 다른 사람한테 알리려고 재미 삼아 대화창 형식으로 구성해 봤다”고 말했다. 이 같은 메신저 조작이 횡행하자 인터넷에는 채팅자 이름의 색깔이나 위치, 말풍선의 곡선 등을 따져 실제 여부를 가리는 ‘판별법’까지 등장했다. 익명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흥미 위주의 글이 워낙 많아 ‘판춘문예’(판+신춘문예)라고 불릴 정도다.

문제는 최근 올라오는 조작 글이 재미를 넘어 ‘혐오 유도’를 위한 글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같은 글 다른 반응’이라며 남녀 반응 차이를 비교한다거나 ‘혼수를 요구했더니 예비 신부가 화를 냈다’, ‘성추행당하는 피해자를 돕다가 폭행범으로 몰렸다’는 식이다. ‘맘충’(몰지각한 엄마를 지칭)이나 ‘한남충’(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말)인 것처럼 몰상식하게 행세해 공분을 일으킨 뒤 댓글을 캡처해 다른 곳에 옮기는 일도 허다하다.

지난달 온라인 커뮤니티들에 퍼진 ‘맘충’(엄마+벌레충·몰지각한 엄마들을 일컫는 말) 혐오 유도를 위한 글. 자신이 ‘맘충’이나 ‘김치녀’인 것처럼 글을 쓴 뒤 네티즌들의 반응을 캡처해 다른 곳에 옮기는 일이 적지 않다.
‘같은 글 다른 반응’ 식으로 성별을 바꾼 뒤 네티즌들의 반응을 캡처해 옮기는 경우도 많다.
온라인에서의 거짓말은 오프라인과 달리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파급력이 커 자칫 커다란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는 ‘남자 친구 살인 인증글’이 올라와 경찰이 실제 수사에 나선 일도 있었다. 글이 게시되기 열흘 전 경기 평택에서 발견된 남성 변사체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신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당 글을 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재미로 글을 지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한 여성커뮤니티에 올라온 ‘남사친 살인 인증글’. 경찰 수사까지 나섰지만 작성자는 “재미 삼아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작 글 현상은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인정 욕구와 지나친 소속감이 불렀다는 분석이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글을 지어내는 것은 자신이 적대감을 갖는 집단을 다른 사람이 함께 욕해주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심리 때문”이라며 “극심한 취업난 등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특정 집단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분노를 온라인에 투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작 글이 온라인에서 돈이 된다는 점을 이유로 꼽는 시각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새로운 홍보수단으로 부상하면서 게시글에 달린 ‘좋아요’나 댓글, 공유 수가 핵심 성과지표가 됐기 때문이다. 홍보업계 관계자는 “댓글이나 좋아요를 개당 5∼10원 정도로 세는데 네티즌의 공분을 사는 글을 올리는 게 유리할 것”이라며 “최근엔 ‘특정 제품 때문에 부부싸움을 했다’는 식의 교묘한 광고 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작글이 횡행하면서 온라인에 올라온 글에는 내용과 관계 없이 ‘주작이다’, ‘평점을 드리겠다’며 비아냥대는 댓글이 꼬리표처럼 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서강대 나은영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실제 경험한 일임에도 지어낸 글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온라인 공간은 더 이상 믿을 만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재미와 익명성이란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네티즌 사이에 어느 정도 자정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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