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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 있는, 심연 속에 있는 ‘나’를 너는 모르잖아”

언젠가의 일이다. 몇 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크게 마음의 변화를 있게 한 일이었다. 평소처럼 친구와 저녁을 먹었고, 간단하게 술도 한잔했다. 취기가 올라왔다. 머릿속 세상이 환해졌고, 적당한 고양감으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친구는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나 자신에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심한 조언을 했다. 그러자 같이 취해 있던 친구가 “내 고민은 그렇게 간단한 건 아냐”라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머리로 망치를 내려치는 듯한 기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도형 경제부 기자

우리는 평생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산다. 타인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행동원리로 언행을 하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 ‘나’의 삶이 ‘너’와 같다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가족 내에서도 우리는 형과 누나, 언니와 동생, 부모님과 할머니·할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하물며 가족을 넘은 ‘타인’은 어떨까. 그런 우리는 타인과 모여 관계를 형성하고, 대화를 하며, 의견을 주고받는다.

‘대화’ 자체가 ‘소통’이 아닌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은 타인에겐 ‘불통’일 수도 있다. 결국 ‘소통’의 핵심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다. 타인 간의 대화는 사적인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는 공적인 공간에서도 우리는 대화를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의 소통 없이는 안 된다. 사적인 공간에서의 소통이 의견의 교류라면, 공적인 공간에서의 소통은 위계질서의 확립이다. ‘일’은 지시와 시행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상사는 부하에게 대화를 통해 지시를 내리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그래서 언제나 ‘이기는’ 싸움을 한다.

‘이기는’ 리더십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기는 리더십은 소통이 아니다. 대화도 아니다. 상사라고 늘 옳은 것이 아니어서다. 상사도 인간이며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자신만의 한계가 있으며, 경험과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하직원이라고 늘 틀린 것도 아니다. 특히 빠른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고 발전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상사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 꼭 약이 된다고 볼 수만도 없다.

이런 사회에서 ‘일’을 잘하려면, 어떻게 ‘이기느냐’의 리더십이 아닌, 어떻게 ‘지느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상사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것만으로 소통이 되었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조직이 망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조직의 ‘심연’ 속에 있는 부하들의 불만을 모르고 넘어가는 상사라면, 좋은 상사라고 볼 수 없다. 나의 생각, 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상사의 생각이 조직을 키우는 핵심원리다. 조직의 심연에 있는 부하들의 생각을 눈치채야 한다. 그렇다고 부하의 의견을 그저 반영하기만 한다면, 그것도 옳은 상사는 아니다. 결국 핵심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는 시점이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다. ‘잘 지는’ 리더십이 결국 소통의 핵심이다.


이도형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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