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으로 피해자도 범행 가담케 해
경찰 단속 반년여 만에 불법 영상물 8만84건
검거자 최다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3만3787건
경찰 “SNS에 사생활 노출 주의해야”
10대 청소년 A양은 어느 날 한 남성으로부터 ‘당신의 얼굴로 만든 딥페이크(허위영상물)가 텔레그램에서 떠돌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A양은 이 남성을 통해 문제의 텔레그램 채팅방 운영자와 다른 피해자와 연락이 닿았다. 운영자는 A양의 신체 일부가 노출된 사진을 줘야 유포를 멈추겠다고 했고, 다른 피해자 역시 사진을 넘겨야 이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경찰 수사 결과 A양에게 처음 메시지를 보낸 남성과 채팅방 운영자, 피해자는 모두 동일인이었다. 서로 다른 계정으로 A양에게 접근해 눈속임한 것이다. 텔레그램에서 ‘판도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B(17)군은 이런 수법으로 피해자를 성착취의 굴레로 끌어들였다.
A양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이자 ‘피의자’ 신분으로 분류됐다. 가족과 지인에게 자신의 일탈이 알려지는 게 두려웠던 A양이 ‘5명을 낚아 오면 해방해주겠다’는 B군의 지시에 따라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고 유인했기 때문이다. A양처럼 협박으로 범행에 가담한 이들은 총 3명으로 모두 10대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B군을 청소년성보호법상 성착취물 제작 등 혐의로 구속하고 전날 검찰에 송치했다고 29일 밝혔다. B군은 지난해 7월부터 이달까지 무작위로 물색한 10대 초반 여성 피해자 19명을 상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34건을 제작하고 불법촬영물 81건, 허위영상물 1832건을 소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A양 등 공범 3명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 중이다.

경찰은 최근 사이버 성폭력 범죄 단속 강화 활동으로 이같은 아동·청소년 성착취 등 사이버성폭력 사범 224명을 검거하고 13명을 구속했다. 적발된 불법 영상물은 8만84건에 달했다. 이번 단속은 지난해 8월28일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실시한 ‘허위영상물 범죄 일제단속’과 함께 진행됐다.
이번 단속으로 적발한 불법 영상물 제작과 유포, 소지 및 시청 현황을 보면 가장 많은 사람이 검거된 유형은 아동·청소년성착취물(3만3787건·검거 124명·구속 11명)이었다. 이들은 텔레그램에서 대규모 성착취방 ‘자경단’을 운영해 기소된 김녹완(33·활동명 목사)과 유사하게 SNS상에서 10대 청소년에게 접근해 협박을 통해 몇 달씩 심리를 지배하며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제공하도록 만들었다.
적발 영상물 건수가 가장 많았던 유형은 허위영상물(3만6193건·검거 71명)이었다. 경찰은 2019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텔레그램에서 일명 ‘작가’로 활동하며 청소년 2명에 대한 아동·청소년성착취물 46개를 제작하고, 여성 직장 동료 등 피해자 182명에 대한 허위영상물 281건을 제작해 소지한 혐의로 50대 남성과 20대 남성 2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텔레그램에서 생성형 AI를 학습시켜 만든 허위영상물 제작 봇을 운영하고 영상 제작 의뢰도 받았다. 허위영상물 제작의 대가는 돈이 아닌 또 다른 ‘성착취물’이었다.

불법촬영물 역시 적발 건수가 1만104건(검거 29명·구속 2명)으로 적잖았다. 경찰은 2023년 9월부터 지난달 12월까지 자신들의 오피스텔에 카메라를 설치해 아동·청소년 3명을 포함한 피해 여성 53명을 대상으로 성관계 장면 등을 1584회 몰래 촬영한 혐의 등으로 20대 남성 1명과 30대 남성 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성관계 대상을 모집했는데, 성형수술을 받고 수익 분배를 약속하는 등 사전에 범행을 공모했다. 경찰은 이들이 불법촬영물을 유료 구독 사이트에 게시해 벌어들인 범죄수익금 1300만원을 추징보전했다.
경찰은 이들 불법 영상물 관련 범죄 다수가 SNS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청소년의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SNS에선 가능하면 비공개 계정으로 친한 지인들과만 정보를 공유하는 등 사생활 노출에 유의해야 한다”며 “자신의 허위영상물이 떠돈다는 연락을 받으면 스스로 해결하기보단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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