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성격유형지표)까지 정해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코인(전자화폐)과 주식 투자로 유도, 120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울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총책 부부 등 45명을 입건하고, 이 중 30대 간부와 채팅담당 등 10명을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100여명으로부터 연애를 빙자한 주식 투자 및 코인 투자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사기단체는 캄보디아 현지에 건물을 통째로 매입한 뒤, 대포폰과 컴퓨터 등 장비를 갖춘 사무실을 차려 본격적인 사기 범죄에 나섰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했고, 연인 또는 친구가 됐다. 그러고 고수익을 미끼로 주식·가상화폐 투자 사기로 유인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서 돈을 가로챘다. 피해금액은 적게는 200만원부터 많게는 8억80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SNS에 올려진 사진 등을 활용해 딥페이크로 만든 얼굴을 프로필로 내걸고 피해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김양식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장은 “남성에게 접근할 땐 여성, 여성에게 접근할 땐 남성으로 가장해 주로 남성이 피해자였던 기존 로맨스 스캠과 달리, 주부, 노인, 장애인 등 접근하는 대상의 구분이 없었던 것이 특징이다”고 말했다. 가상인물은 혈액형, 가족관계, 학력, 재산수준 등 세세한 정보까지 정해뒀다. 서울 강남구의 40억원대 아파트에 사는 34세 여성, 고위 군인 출신 아버지를 둔 외동딸, 필라테스와 골프가 취미인 밝고 긍정적인 ESFJ 등이다. 이들은 10일치 분량의 대본을 준비해둘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주식·코인 투자는 직접적으로 권유하지 않았다. “같이 투자 공부를 하자”는 식으로 유인해 자신들이 만든 가상의 투자전문가의 유튜브 강의로 연결했다. 투자전문가의 유튜브 강의에는 조직원들이 “믿을 만한 강의”, “듣길 잘했다”는 등의 댓글을 실시간으로 달아 신뢰를 높였다. 그런 다음 강의를 한 가상의 투자전문가와 피해자를 연결했고, 투자를 하도록 했다. 이들은 투자 사이트까지 실제 존재하는 금융회사 명칭을 도용한 가짜 투자 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앱을 통해선 피해자들이 투자한 돈이 실제 수익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피해자들이 투자한 돈을 빼려고 하면 “세금 등을 내고나면 손해이니 조금 더 기다리자”는 말로 만류하고, 이후 그대로 연락을 끊었다. 사기범죄로 벌어들인 돈은 가상화폐, 상품권 거래 등 자금세탁 조직을 통해 현금화 해 사용했다.
이들의 범행은 지난해 7월쯤 경찰에 로맨스 스캠 피해자 신고가 접수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해당 범죄단체에서 나온 사람의 증언 등이 덧붙여졌고, 울산경찰청이 집중 수사관서로 정해지면서 경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인터폴 수배를 통해 붙잡아 캄보디아에서 구금 중인 총책 부부를 국내 송환하는 절차를 밟는 등 공범들을 쫓고 있다. 경찰은 자금세탁 범행수법 등에 대한 추가 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범죄에 이용된 사이트 등의 삭제·차단 요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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