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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중국인의 물음, 한국 정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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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1 23:02:47 수정 : 2025-06-01 23: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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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정치권력 변동 거의 없어
韓 정치적 격변 위험하게 봐
韓 극심한 충돌에도 균형 잡아
민주주의 절차적 안정성 입증

지난해 초의 일이다. 중국 지인이 “요즘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이 줄지 않았느냐. 지난번처럼 탄핵될 가능성은 없느냐” 하고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아는 체하며 “당신이 한국 정치상황을 잘 몰라서 그렇다. 이미 지난 탄핵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어지간한 일로는 탄핵이라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조기 대선을 포함해 중국에서 바라본 한국 정치는 늘 극적이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권력 교체가 이어지는 한국 정치의 장면들은 중국인들에게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다. 정치권력의 변동이 거의 없는 중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정치적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때로는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표면의 소란과 달리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 민주주의는 오히려 제도적 안정성을 쌓아 왔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관리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대규모 촛불집회를 불러일으킨 국정농단 사태는 거센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과 조기 대선이라는 헌정 질서 안의 절차로 수습됐다. 극심한 정치적 충돌 속에서도 법적 제도와 시민의 선택이 작동했고, 정권교체는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여야 간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도 이 같은 절차적 안정성은 제도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3일 치러지는 대선 역시 이런 한국 정치의 역동성과 안정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장면일 테다. 진영 대립과 때로는 저열한 네거티브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선거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고,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다. 최근 움직임을 보면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이와 달리 중국은 2022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체제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장기안정 구조를 굳혔다. 지도부 교체는 거의 내부 조율을 통해 이뤄지고, 외부의 권력 충격은 차단된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중국에서 ‘정권교체’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정치문화의 차이가 한국의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각을 규정한다. “어떻게 정권이 그렇게 자주 바뀌면서 체제가 유지되느냐”는 질문은 중국인들의 자연스러운 의문일 수 있겠다.

이번 대선을 지켜보는 중국의 관심은 정치체제의 차이를 넘어 실질적 이해관계로 옮겨간다. 무엇보다 미·중 전략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한국의 외교 노선이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 여부와 대중 견제 성향이 유지될지, 아니면 관계 회복의 여지가 생길지 등의 측면에서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 북핵 문제 등에서도 차기 정부의 입장은 곧바로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일부 반중감정이 정치권으로 확산되는 조짐 역시 보인다. 보수진영에서는 ‘안보 동맹은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분리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줄서기 외교’에 대한 비판과 균형론이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역시 상호존중을 내세우면서도 때로는 경제적 압박과 여론전을 병행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한국은 선거 때마다 안보와 경제, 외교 노선을 두고 국민이 정권의 균형추를 바꾸는 시스템”이라며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한·미동맹이라는 기본 축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중국에서는 권력 승계가 지도부 내부 협의와 인사 절차로 조용히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직접 최고권력을 교체한다. 중국인 입장에서는 이 같은 정치문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낯설다. 한국 사회가 때로는 격렬하게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일정한 틀 안에서 정치적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임을 중국은 온전히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성인 듯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시민의 선택이 제도적으로 반영되고, 권력의 승계가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은 중요한 자산이다. 중국인들이 묻는 탄핵 관련 질문 속에는 체제가 갖는 근본적 차이가 투영돼 있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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