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안전장치 확보 총력전
판로 막힌 美 대두 협상 테이블에
농산물 추가 개방 논의 가능성
정부가 한·미 관세협상 타결 목표 시점으로 정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가 약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관세협상 협의가 최종 조율 단계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집행 방식에 대해 ‘선불(up front)’로 ‘직접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관세협상 추가협의를 위해 지난 주말 순차적으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여한구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김 실장은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대부분의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조율이 필요한 쟁점들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에서 관세협상을 총괄하는 김 실장과 실무적으로 협상을 책임지는 구 부총리, 김 장관이 일제히 워싱턴으로 향하면서 관세협상에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왔으나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은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재 관세협상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미 통화스와프 등 진전이 쉽지 않지만, 미국이 우리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는 추가협의 과정에서 미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 직접 투자 요구에 맞서 ‘외환시장 안전장치’를 확보하기 위한 설득 작업에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를 장기 분산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3500억달러를 10년에 걸쳐 분할 투자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출자금을 한꺼번에 납입하지 않고 일정 한도 내에서 필요할 때마다 출자 요구에 응하는 ‘캐피털콜’(capital call) 방식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500억달러가 정부 외환보유액의 80%가 넘는 만큼 외환시장 안전장치 확보를 위한 ‘상업적 합리성’을 갖추기 위해 여러 방안을 미 측에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이날 공항에서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충격 완화를 위해 미국 정부에 요청한 통화스와프 관련 논의가 진전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한 (미국의) 이해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통화스와프 용어나 개별 (투자) 프로그램까지 언급하는 것은 지금 협상이 서로 연계돼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 실장과 김 장관, 여 본부장은 지난 16일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함께 만났다. 러트닉 장관과의 협상에 앞서 백악관에서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도 만났다. 여 본부장은 방미 기간 협상 파트너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통상 갈등으로 불거진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조치로 트럼프 행정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확대하는 것을 관세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농산물 (개방 문제) 관련해 새롭게 협상된 것은 듣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들은 것은 대두 정도”라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16일 미 측으로부터 대두 수입 확대 요구를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협상 과정 중이라 확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관세협상 과정에서 농축산물 추가 개방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거듭 밝혔으나,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 문제가 논의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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