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서관 중 사연없이 생겨난 도서관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누군가의 눈물과 설득, 시민의 의지로 생겨났어요. 도서관은 국가 혁신 능력을 만드는 공공재입니다.”
‘88만원 세대’로 우리 사회 세대 간 불균형을 지적하고 ‘386세대 유감’으로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된 386세대의 공과 과를 공론화했던 진보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 이번엔 ‘도서관 경제’란 개념을 제시했다. 부제가 ‘위대한 도서관 사서와 도서관 시민’인 신간 ‘힘내라, 도서관!’을 통해 도서관이 문화시설이 아니라 지식과 인적자본을 생산·확산하는 경제적 장치이자 사회 인프라라는 관점이다. 지난달 10일 서울 평창동 한 카페에서 만난 우 박사는 신생국가였던 미국이 경제력에서 구대륙을 제칠 수 있었던 것도 벤저민 프랭클린이 처음 만든 회원제 도서관 열풍과 거부 카네기가 전국에 2200여개나 세운 공공도서관에 힘입은 바 크다고 분석한다.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다가 그가 만든 회원제 도서관이 세계 최초 공공도서관이라는 대목에서 너무 놀랐어요.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유럽의 도서관 전통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책을 빌려주는 공공도서관’을 처음 만든 건 미국이었습니다. 프랭클린이 주도한 독서 모임 준토(Junto)가 필라델피아 공공도서관으로 발전했고, 그 모델이 순식간에 신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미국 건국 세대가 도시를 세우면서 구성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도서관이었어요.”
전통적으로 유럽에선 ‘비블리오테크(bibliothèque)’로 불리는 도서관은 서류나 책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왕·귀족이나 종교 기관 소유의 공간이었던 도서관이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한 요소로 거듭난 것이다.
“카네기가 자신의 부의 상당 부분을 투입해서 미국 전역에 2200여개 공공도서관을 기증했거든요. 그 결과 19세기 말에 이미 미국의 산업 생산력이 유럽을 앞질렀습니다. 도서관을 폭발적으로 확충한 다음,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지식 중심 경제로 쑥 치고 나가 버린 거예요. 철학과 학문 전통이 깊었던 유럽이지만, 공공도서관 측면에서는 미국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다른 조건이 다 비슷하면, 결국 공공도서관이 잘 발달한 나라가 혁신을 주도하게 되더라는 거죠. 미국이 20세기 내내 세계 경제의 혁신을 이끌었던 배경에는 그렇게 쌓아 올린 도서관 기반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을 20세기 글로벌 리더로 끌어올린 힘 중 하나가 잘 확충된 도서관이에요.”
여기서 등장하는 게 ‘도서관 시민’이다. 앤드루 카네기가 대표적이다. 그 역시 가난한 소년 노동자 출신이었는데 퇴역 대령이 자택에 조그맣게 연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공부해서 훗날 철강 재벌이 됐고, 다시 전국에 광적으로 도서관을 지은 것이다.
“사연없는 도서관 없다”는 우 박사 말대로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도 특별하다. 일제가 패망한 바로 다음 날 한국인 직원 16명이 조선총독부 도서관을 확보하기로 결의한 게 국립중앙도서관의 시작이다. 우 박사는 “식민지에서 쌓은 자료 중 감추고 싶은 것도 있고 남기기 싫은 것도 있었을 테니, 도망가는 입장에선 싹 불태워버리는 게 제일 쉬웠을 것”이라며 “광복 직후 우리 쪽 사서들이 그 책들을 지켜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국 도서관의 발전 과정 역시 파란만장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1·4 후퇴 때 도서관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미래를 위한 투자가 일어난 것이다. 국회도서관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문 열었고 경희대학교는 첫 대학도서관을 세웠다. 전시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도서관 설립이 이어졌고, 학교마다 도서관을 갖추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책 상자’를 들고 농촌을 돌던 마을문고 운동도 시작됐다. 전쟁기에도 지식과 독서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조국 재건에 절박했던 한국 사회였다. “국가적으로 위기 상황이 되니 오히려 ‘지식’과 ‘문화’의 중요성을 절감한 게 아닌가 싶어요. 6·25 전쟁 이전까지는 공공도서관 수가 거의 안 늘었어요.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1·4 후퇴처럼 나라가 백척간두에 선 상황이 되자 피난처에서 임시 도서관들을 만들고, 각종 기록을 남기려고 애쓰고… 정말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죠. 그 덕분에 전쟁 중에도 지식의 맥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1960∼70년대 군사정권 시절은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의 또 다른 중요한 전환점이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3년에 도서관법이 제정됐다. 1960년대 초 20개 남짓이던 공공도서관이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100개가 넘게 늘어났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공공도서관 확충 5개년 계획이 나란히 진행됐다. 우 박사는 “한 줌의 사서가 군사정권을 설득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1960년대 초 경기도지사였던 박창원 장군(1925-1993)이 도서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화를 빼놓을 수 없어요. 도서관법이 통과되고 나서, 경기도지사가 ‘도내 모든 시·군에 도서관을 의무적으로 만들어라’고 지시합니다. 법적으로는 권고 사항이었지만 경기도 차원에서 강하게 밀어붙인 거예요. 그때부터 경기도 곳곳에 도서관이 우후죽순 세워졌고, 지금도 통계를 보면 서울보다 경기도의 공공도서관 수나 이용 지표가 더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도서관 숫자는 꾸준히 늘어났다고 한다. 도서관 역사만 놓고 보면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역할이 컸던 건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우 박사 평가다. 반면 김영삼 정부는 도서관에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윤석열 정부 시절 공공도서관 정책은 의무 비치 자료 권수를 대폭 줄이는 등 후퇴했다고 한다.
현재 국내 도서관 상황에 대해선 잘사는 동네와 못사는 동네의 도서관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각 지역 형편에 맞게 자율적으로 하라’는 식이다 보니 서울 서초구 같은 곳은 지역 복지 차원에서 공공도서관이 많아지고 서비스가 좋아지니 시민이 더 많이 찾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반면 낙후지역은 재정 부담으로 출생아 수 감소 등을 이유로 가장 먼저 도서관부터 없애려 한다는 것. 우 박사는 “초등학교 폐교되는 게 지역 소멸의 신호탄이듯이, 도서관이 사라지면 그 지역은 정말 미래가 없다”고 우려했다. “아이 키울 집은 더 줄어들고, 청소년이 뭔가 배울 공간도 없어지는 거니까요. 시장 논리에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조정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인터넷 혁명에 이어 인공지능(AI)서비스가 보편화한 이 시대에 도서관은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 박사는 “인공지능으로는 도서관을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AI는 책을 못 읽어요. 책은 저작권이 있는 지식의 저장소라서 AI가 무단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식에 대해 정당하게 지불할 수 있는 방식은 여전히 책밖에 없어요. 결국 가장 고급 지식은 책에 담기고, 그 책은 도서관을 통해 접근하게 되죠. 이 구조는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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