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간 어린 단종 생의 마지막 순간 담아
촌부와 신분 차이 넘어 훈훈한 브로맨스
유해진·박지훈 연기 케미… 웃음·눈물 선사
“단종은 어떤 왕이었을까. 단종을 단순히 나약한 인물로 그릴 거라면 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장항준 감독)
영화 ‘왕과 사는 남자’(2월4일 개봉)는 계유정난(1453)으로 왕위를 찬탈당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그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 마을 촌장 엄흥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설 연휴 극장가를 겨냥한 작품으로, 폐위된 어린 임금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2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어떻게 하면 뻔하지 않게 만들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기존 이미지대로 단종을 다룬다면 굳이 재생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종 왕위 찬탈을 주도한 권력자 한명회와 단종은 수많은 사극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인물이다. 영화는 이 익숙한 인물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단종(박지훈)은 연약한 희생자가 아닌 판단력과 의지를 지닌 인물로, 활쏘기에도 능한 모습을 보인다. 한명회(유지태)는 압도적 카리스마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장 감독은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나 비극적으로 죽었다고 해서 나약하고 힘없는 인물이었을 거라는 해석은 정치적 결과에 따른 것”이라며 “기록을 보면 단종은 영특하고 강단이 있어 세종이 각별히 아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한명회 캐릭터에 대해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한명회, 확실한 무게감을 지닌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의 중심에는 광천골 촌장으로 단종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보수주인 엄흥도(유해진)가 있다. ‘연려실기술’ 등 일부 사서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기록이 제한적이어서 영화 속 행적 대부분은 창작에 기대고 있다.
영화는 단종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배경에, 엄흥도를 비롯한 광천골 촌부들이 벌이는 유쾌한 코미디를 전경에 배치한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어린 임금을 정성으로 돌보고, 임금은 이들과 교류하며 민초의 삶에 눈뜬다. 엄흥도는 단순한 감시자를 넘어 아버지의 마음으로 단종을 보살피는 존재로 거듭난다.
두 시간 남짓 영화는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인물들이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쌓아간다. 그 종착지는 단종의 죽음 장면이다.
단종의 죽음을 둘러싼 기록은 자결과 타살까지 다양한 설이 난무한다. 영화는 이러한 공백을 극적으로 확장해 단종이 사약을 거부하고 엄흥도에게 조력을 구했다는 설정을 담았다. 적극적인 음악과 연출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며 신파적 정서를 완성한다.
국가권력의 명에 따라 강물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장례를 치르는 장면에서는, 한 소시민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비범한 존재로 성장했음이 엿보인다. 작품은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는 웃음과 감동을 담아 설 연휴 가족 관객에게 무난한 선택지가 될 전망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인다. 발군의 코미디 연기와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 연기를 소화한 유해진, 거구에서 나오는 위압감으로 참신한 한명회를 구현해낸 유지태 모두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중에서도 박지훈의 발견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이다. ‘약한영웅’ 시리즈로 아이돌 가수 이미지를 벗고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처연한 소년미 속 군주의 위엄과 좌절,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배우임을 확인시켰다.
유해진은 “박지훈의 그렁그렁한 눈을 마주치는 순간 동정하는 마음이 확 들면서, 바로 배우 박지훈이 아닌 어린 단종으로 보였다”며 “감정을 표현하는 에너지에 깜짝 놀라곤 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박지훈의 적극적 태도와 열의를 높이 평가하며 “선생님이 말 잘 듣고 열심히 하는 학생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자세가 아주 좋은 배우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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