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설에서 미국의 차세대 전투기 F-47에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언급했다.
즉흥적 발언이었지만,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이 F-22를 비롯한 5세대 전투기를 이을 6세대 전투기의 명칭을 F-47로 정했다고 직접 밝힌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쓰는 주요 무기체계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표시해왔다. ‘최강’ ‘전례 없는’ 등의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고, 미 해군의 신형 전투함을 트럼프급으로 부를 정도로 개인적인 브랜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F-47의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F-47 개발이 난항을 겪으면, 자신과 관계가 없다며 ‘손절’할 경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F-47, 트럼프·미군 정치적 상징
F-47은 미 공군이 2030년대 이후 제공권 장악을 위해 야심 차게 개발에 나선 6세대 스텔스 전투기다.
급속하게 공군력을 증강하는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면서 노후한 F-22를 대체할 기체다. 지난해 3월 보잉이 개발사로 선정되어 개발이 진행 중이다.
F-47이라는 이름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요소와 미 공군의 상징적 의미를 조합한 결과다.
미군의 항공력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서부터였다. 6·25 전쟁 당시 한국 공군이 사용했던 F-51 전투기도 2차 대전에서 P-51이란 이름으로 활약했다.
P-51과 더불어 유럽 전선 등에서 쓰였던 기체가 P-47 전투기였다. P-47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을 상대로 강력한 성능을 과시하며 공중전과 지상지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높은 출력을 갖춰 고공에서 우수한 성능을 입증했고, 강력한 무장과 방어력으로 독일군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을 격파한 미군은 1947년 육군에서 항공대를 분리, 공군이라는 독자적인 군종으로 전환했다. 미 공군에겐 ‘47’이라는 숫자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미국 제47대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화자찬하거나 과장된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미군 무기체계를 자신의 메시지 또는 브랜드의 소재로 사용해서 성과를 부각하는 패턴을 구사해왔다.
F-47은 막대한 예산과 기술적 논란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취소 위기를 겪었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사업 절차가 진행됐다.
차세대 전투기 이름이 F-47로 정해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프로그램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해석이 제기됐던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F-47을 “가장 파괴적인 전투기”라고 평가하면서도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개인 브랜드를 보호하면서 미 공군과 보잉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F-47이 처음으로 비행하는 모습이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 이뤄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성과로 띄울 수 있다.
하지만 개발 일정이 지연되거나 논란이 증폭되면 트럼프의 개인적 브랜드에 영향을 미친다.
“47이란 이름을 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미 공군과 보잉에 일정 준수와 성능 달성을 압박하고,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과시하며, 개인 브랜드를 관리하는 효과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인 ‘개인 브랜드 앞세우기’ ‘즉흥적 발언’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셈이다.
F-47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는 미군 무기체계와 관련,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해군의 최신 핵추진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급에 설치, 전투기를 이륙시키는 역할을 하는 최신 전자기식 사출장치(EMALS)에 대해 기존의 증기식 사출기를 원한다며 전자기식 사출장치를 “아인슈타인이나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초 행정명령으로 미 본토를 지킬 골든 돔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을 지시했다. 최근 공개된 국방전략(NDS)에서도 핵심 과제로 분류됐으나, 구체적 진전은 부족한 실정이다.
F-47의 명칭 변경 가능성을 거론한 다보스포럼에선 방위산업체들의 자사주 매입 금지를 요구하면서 패트리엇 지대공미사일 등의 생산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기술적 리스크 있는 F-47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는 별개로 F-47 개발 프로그램을 둘러싼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의 항공우주산업은 코로나19로 인해 공급망과 인력 구조가 크게 흔들렸던 후유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협력업체들이 공급망에서 이탈했고, 코로나19 당시 재택근무를 했다가 사무실 또는 공장 출근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장거리 출근을 원치 않았던 인력들이 거주지 인근 공장으로 이직했다.
이로 인해 부품 및 장비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희토류와 특수합금 등 전투기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도 지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과 맞물려 F-47에 탑재할 차세대 엔진의 시제품 완성도 2027년 말에서 2030년 상반기로 미뤄졌다.
미 공군은 엔진 지연에도 첫 비행 시점을 2028년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엔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F-47과 함께 유·무인 복합체계의 일부로 운용될 무인기를 F-47의 임무체계와 통합하는 과제도 리스크가 잠복해 있다.
전투기 기체와 무인기 또는 항공무장을 체계통합하는 경우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기체와 무인기, 항공무장이 모두 새로 개발되는 경우엔 리스크가 가장 높다.
기존에 운용중인 것들은 기술적 검증이 이뤄졌고, 노하우도 축적됐기 때문에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모든 요소가 신규 개발 품목이라면 초기 리스크가 불거질 위험이 충분하다.
개발사인 보잉의 전례도 우려를 높이는 이유다. 보잉은 과거 군용기 개발 프로그램에서 문제를 노출한 바 있다. 기술적 문제와 더불어 프로젝트 관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보잉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에서 개발 일정을 설정한 뒤, 결함 발견→수정→시험 등의 재설계 작업이 반복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재무적 상황과 주주 가치 중시 경영이 기술과 품질을 소홀하게 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KC-46A 공중급유기는 급유 붐과 원격조종 시야체계(RVS)의 결함, 생산라인 품질 등의 문제로 일정이 지연됐다. 미 전쟁부 등은 시스템 공학과 리스크 관리 미흡이 KC-46A의 일정과 품질에 문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T-7A 훈련기는 조종사의 생존성과 소프트웨어 및 공급망 문제 등으로 초기작전능력(IOC) 획득이 지연됐다. 에어포스원 대체기도 숙련된 엔지니어와 보안 인력 유지에 실패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같은 문제가 F-47에서도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F-47은 F-22·35보다 높은 스텔스 성능과 네트워크 융합 등의 첨단 기술이 대거 반영된다. 기존 일정과 예산 계획을 준수하면서 F-47 개발이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 우려하는 시선이 있는 이유다.
개발 과정에서 기술성숙도를 확인하고, 미국 정부의 통제권을 강화하면서 리스크는 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리스크 관리와 통제가 실패한다면 예산 소요가 증가할 위험이 있다. F-22·35보다 우수한 성능을 갖출 F-47의 개발에는 수백억 달러가 투입될 전망이다. 비용이 당초 예상을 넘어서면, 대당 단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단가가 폭등하면 구매량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대당 단가가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기술 개발과 공군력 유지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J-20, J-35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생산하면서 6세대 전투기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공중조기경보기를 비롯한 일부 지원 전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는 지적마저 제기되는 국면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F-47 개발에 변수가 발생하면, 미국은 미래 제공권을 유지하기 위한 군사적 부담이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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