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 왕성한 4050 가장 위협…사회적 비용 연간 2조4000억원 ‘가계 파괴범’
“통증 느끼면 늦다” 생사 가르는 골든타임, 6개월 주기 초음파·피검사 병행 필수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며 ‘레슬링의 신’으로 불렸던 심권호(53) 씨. 최근 방송을 통해 간암 투병 사실을 고백한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씁쓸함이 교차했습니다. 현역 시절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당시 그 흔한 술자리조차 멀리했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했습니다.
그는 은퇴 이후 한동안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이 지나고 찾아온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그는 다시 몸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절주’를 선언하며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문의들은 “심 씨의 사례는 이제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우리가 알던 단순 ‘술병’으로서의 간암 시대는 저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계 뿌리 뽑는 ‘4050의 저승사자’
간암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한 가정을 송두리째 흔드는 ‘경제적 지진’에 가깝다. 문제는 이 병이 하필이면 자녀 학비와 대출금 상환 등으로 지출이 정점을 찍는 40대와 50대 남성을 정밀 타격한다는 점이다.
4일 국립암센터의 암 통계 자료를 들여다보면 숨이 턱 막힌다. 간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2조4000억원을 넘어서며 전체 암 종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간암 환자가 오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게 환자의 생명이고, 그 다음이 남겨진 가족들의 생계”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암에 비해 치료 과정이 까다롭고 재발이 잦아, 사회 복귀가 늦어질수록 가장의 빈자리는 커진다. 결국 병마와 싸우다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는 비극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현실이다.
◆“술 안마시니 괜찮다?”…방심이 키운 ‘기름진 암’
과거 간암 병동이 술 냄새와 B형 간염 바이러스로 채워졌다면, 지금은 그 자리를 ‘대사이상 지방간(MASLD)’이 채우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에 따르면 알코올과 무관한 지방간 환자 곡선은 매년 가파르게 우상향하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피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기름진 배달 음식, 숨 찰 정도의 운동 부족, 불룩 나온 뱃살이 있다면 당신의 간은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간세포에 낀 기름때가 염증을 만들고, 이것이 굳어지면 곧 암이 된다.
특히 은퇴 후 활동량이 줄어든 중년 남성들이 취약하다. 근육이 빠져나간 자리를 지방이 소리 없이 채우기 때문이다. 이문형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 예방접종과 항바이러스제 확산으로 바이러스성 간암은 줄었다”면서도 “비알코올성 지방간,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 등이 새로운 간암 위험 요인으로 급부상했다”고 말했다.
◆증상 느끼면 이미 늦다…생사 가르는 ‘6개월의 법칙’
간암이 악질적인 이유는 ‘예고편’이 없다는 점이다. 간 내부엔 신경이 없어 종양이 주먹만 하게 커져 간 피막을 뚫고 나올 때까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이 하나같이 “소화가 좀 안 돼서 왔는데 말기라니요”라며 가슴을 치는 이유다.
결국 유일한 살길은 기계적인 검진뿐이다. 국가암데이터센터에 따르면 1cm 미만 초기 발견 시 완치율은 90%가 넘지만, 증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으면 생존율은 벼랑 끝으로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6개월’을 생명선으로 제시한다. 암세포가 생겨 1cm 크기로 자라는 ‘배가 속도(Doubling time)’를 고려한 마지노선이다. 심 씨가 다시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운 좋게 검진 과정에서 발견해 골든타임을 잡았기 때문이다.
박예완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은 상당수의 간세포가 파괴될 때까지도 위험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며 “간 자체에 신경세포가 적다 보니 암이 커지면서 간을 둘러싼 피막을 침범한 후에야 비로소 통증이나 이상 증상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증상이 없을 때 검사하는 것이 간암 관리 전략의 핵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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