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많은 분이 ‘AI(인공지능) 회칙’이라고 부르는데, 이 회칙 주제는 AI가 아니에요.”
교황청 복음화부에서 일하는 김성수 신부는 최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뢰로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마니피카 후마니타스)’의 한글 번역을 마쳤다. 2023년부터 바티칸에서 근무 중인 그는 로마 현지에서 윤리신학 박사,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신학자다. 휴가차 방한한 김 신부를 지난 9일 명동에서 만났다. 김 신부는 이 회칙이 AI의 발달과 함께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인간 존엄성이 훼손될 위험 요소가 무엇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과 어떻게 대화하며 더 나은 사회 건설에 기여할지를 다루는 문서라고 강조했다.
조만간 국내에 배포될 A4용지 80매 분량 회칙을 번역하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묻자 김 신부는 “‘구경꾼으로 남지 말고 다 참여하라’시는 게 제일 와닿았다”고 말했다. 이는 회칙 첫 문장부터 등장하는 ‘바벨탑을 지을 것인가, 느헤미야의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연결된다. 바벨탑은 성경에서 사람들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는 이야기다. 김 신부는 이것이 다양성 속의 일치가 아니라 획일화, 곧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인간을 희생하는 ‘톱다운’ 방식을 상징한다고 풀이했다. 반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유대인 지도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파괴됐다는 소식에 먼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기도로 성찰한 뒤 도시에 남은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모두 불러 이야기를 듣고 성벽 재건 구획을 나눠줬다. 아무리 작은 이라도 참여할 몫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AI 시대 쟁점을 총망라한 이번 회칙이 나오기까지 여러 전문가가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회칙을 비롯한 교회의 공식 문언은 개인 작업이 아니라 교회의 문언이기에 참여자들은 이를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I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토론에 모두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흐름 앞에선 개인은 물론 각국 정부도 무력한 상황이다. 김 신부는 회칙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공론화·토론 자료 역할도 할 수 있다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한국은 챗GPT 유료 이용자 수 세계 2위 국가다. 이 회칙이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로 닿았으면 하냐는 질문에 그는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이 변화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다. 단순히 기술 발전이나 생활의 편리함 차원을 넘어, 이 발전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것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방향인지 함께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회칙이 이야기하는 데이터 라벨링 종사자나 데이터 채굴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고령층이나 경제적 취약자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논의의 시작이다. 알고리즘이 만드는 양극화된 여론에 그대로 노출되고 가짜뉴스를 가려내기 어려운 이들 그리고 이 기술을 아예 모르는 이들까지 함께 고려하는 AI 시대 인권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프란치스코 전임 교황 때부터 일관되게 강조돼 온 원리다. 아무리 작고 힘없고 못 배운 사람이라도 공동체에 기여할 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그렇지 않죠. 소수의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도 따라가는 상황이죠.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그걸 통해 전체 공동체에 기여하고 내가 성장하는 건데, 그 기회 자체가 박탈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경꾼으로 남을 게 아니라 나도 분명히 할 수 있는 몫이 있고, 단순히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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