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선거 관리가 싫은 선관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수정 :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1998년 김대중(DJ)정부 출범 후 관가에 ‘5부(府) 요인’이란 용어가 새롭게 출현했다. 기존에는 입법부의 국회의장, 사법부의 대법원장 그리고 행정부의 국무총리를 콕 집어 ‘3부 요인’으로 부르는 것이 관행이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 바로 아래에 있으면서 각각 입법·사법·행정부를 관장하는 최고위급 공직자란 뜻에서였다. 그런데 DJ가 대통령이 된 뒤 청와대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이들 3부 요인 외에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나란히 초청되며 5부 요인으로 확대됐다. 당시 청와대는 “헌재와 선관위는 국회·법원·정부와 같은 독립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과 더불어 양대 사법기관으로 통하던 헌재야 그렇다 쳐도 선관위로선 위상이 엄청 높아진 셈이다.

경기 과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전경. 한자로 ‘공명선거’(公明選擧·부정 없이 떳떳하게 치르는 선거)라고 적힌 표지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뉴스1
경기 과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전경. 한자로 ‘공명선거’(公明選擧·부정 없이 떳떳하게 치르는 선거)라고 적힌 표지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뉴스1

사실 선관위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별로 존재감이 없었다. 훗날 국무총리와 야당(한나라당) 총재를 지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이회창(91) 전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하던 1989년의 일이다. 강원 동해와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졌는데, 과열과 혼탁으로 얼룩져 ‘부정 선거’란 비판이 거셌는데도 선관위는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이회창 위원장은 그해 10월 사의를 밝히며 “불법 선거운동을 규제하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물론 대법관 업무는 그대로 수행하면서 겸직인 선관위원장만 내려놓겠다는 뜻이었으나, 그래도 현직 선관위원장의 자진 사퇴는 정관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DJ의 전임자인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선관위 권한이 막강해졌다. YS 임기 2년 차인 1994년 3월 여야 합의로 개정된 선거법은 대선, 총선 등 각종 선거 때 정당들이 사용한 정치자금 내역에 대한 조사권을 선관위에 부여했다. 거물급 정치인조차 선관위로부터 ‘선거운동 자금을 부정하게 쓴 정황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 순간 자칫 정치판에서 퇴출을 당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때부터 정당 및 정치인은 선관위 앞에서 ‘을’(乙)로 전락했다. 6·3 지방선거 당시 투표 용지 부족 사태로 선관위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뒤 모두가 선관위 개혁을 외쳤다. ‘어쩌다 선관위가 성역처럼 되었느냐’는 언론의 질의에 모 정치인은 “정치인에겐 수사기관이나 법원보다 더 두려운 게 선관위”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참정권 침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에 출석한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노 전 위원장은 국민적 공분을 산 6·3 지방선거 투표 용지 부족 사태 당시 선관위를 이끌었던 책임자다. 뉴스1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참정권 침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에 출석한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노 전 위원장은 국민적 공분을 산 6·3 지방선거 투표 용지 부족 사태 당시 선관위를 이끌었던 책임자다. 뉴스1

지난 8∼16일 선관위 직원 1100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투표 용지 부족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참여자의 80%(복수 응답 가능)가 “투표 사무를 행정안전부 및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라고 독립 헌법기관으로 만든 것이 바로 선관위다. 그런데 정작 그 구성원들은 “선거 관리를 하기 싫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목숨이 아까워 나라를 못 지키겠다”고 떼를 쓰는 군인을 보는 것만큼이나 황당할 따름이다. 이럴 바에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안부 장관 산하에 ‘선거관리국’을 신설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선관위원장을 국가 5부 요인으로 대접하는 데 드는 혈세가 아까울 뿐이다.


오피니언

포토

이효리, 독보적인 분위기
  • 이효리, 독보적인 분위기
  • 김혜수, 트레이닝복 입고 활짝
  • 뉴진스 민지, 숏폼 영상도 공개…청순 비주얼 눈길
  • 선미, 핑크 메이크업에 금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