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겸 사업가 여에스더가 남편 홍혜걸과 사후 상속을 두고 나눈 대화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연 매출 3000억원 규모의 건강기능식품 기업을 이끄는 자산가인 만큼 그녀의 입에서 나온 유언장 언급은 단순한 부부 간의 농담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무게감을 지닌다. 사후 재산 분배를 둘러싼 이들의 솔직한 공방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상속과 재혼의 현실적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건의 발단은 채널을 돌리다 마주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여에스더는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에서 배우 남궁민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연인을 시청하던 중 부부의 사후 세계로 이야기를 옮겨갔다. 평소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 온 남편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던진 가벼운 화두였다. “혜걸 씨 같은 사람이 아내가 떠나면 제일 먼저 새장가를 갈 것”이라는 진단은 뼈가 담긴 농담이었다.
남편 홍혜걸은 만약 그런 일이 온다면 반려견과 남은 생을 살겠다고 받아쳤지만 부부의 시선은 이미 법적 현실을 향하고 있었다. 여에스더는 새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라면서도 결혼계약서는 반드시 쓰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재산분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모적인 갈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여기서 터져 나온 숫자는 시청자들의 허를 찔렀다. 홍혜걸이 전 재산을 자신에게 줄 것으로 기대하며 농담을 건네자 여에스더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재산의 10∼20% 정도만 받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홍혜걸은 배우자로서 법적으로 보장받는 최소한의 유류분인 25%를 주장하며 맞섰지만 여에스더는 이미 법적 테두리 안에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미 다 조치해 놨다는 그녀의 고백은 철저한 사전 대비의 결과물이다. 돌발적인 사고나 갑작스러운 비극이 닥쳤을 때 생기는 공백을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지다. 거주 중인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퇴직연금은 온전히 남편에게 내어주겠지만 그 이상의 자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경계를 세웠다.
그녀가 이처럼 유언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두 아들을 향한 절박한 보호 본능이다. 재산 정리가 명확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자가 재혼할 경우 자녀들에게 돌아갈 정당한 몫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새엄마가 들어와 아이들의 몫을 가져가는 비극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유언장은 필수적인 안전장치였다.
여에스더의 이러한 면모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경상북도 대구의 내로라하는 부잣집에서 5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유년 시절부터 독특한 인생의 발자취를 그려왔다. 조부가 대구일보 사주를 지내고 지역 경제계의 거물이던 유복한 환경 속에서도,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와 엄격한 훈육 아래서 늘 마음 한구석의 결핍을 안고 자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외모 콤플렉스와 심각한 우울증이라는 고비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난치성 우울증으로 인해 수십 번의 전기경련치료를 견뎌내야 했고 자발적 안락사까지 진지하게 고민했을 만큼 치열한 생존의 기록을 써 내려왔다. 의사가 된 이유가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였다는 고백은 그녀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자기 자리를 구축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결핍과 상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대한민국 최고의 건강기능식품 기업가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몸이 선천적으로 약해 기능의학에 눈을 떴고 환자들에게 영양의 중요성을 설파하다 직접 기업을 차렸다. 현재 연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하기까지 수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위기 때마다 그녀를 지탱한 것은 철저한 현실 감각과 책임감이었다.
이번 방송에서 드러난 유언장 해프닝은 단순한 부부의 만담이 아니다. 성공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성취를 어떻게 지키고 다음 세대에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지침서다. 오랜 세월 쌓아온 부부의 애정 뒤에 숨겨진 차갑고도 명민한 법적 계산은 함께 나이들어가는 부부의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단단한 방어막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여에스더의 선택은 자식들을 향한 맹목적 사랑이자 철저한 자기결정권의 선택이다. 3000억원이라는 거대한 자산의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이 사후의 혼란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모습은 남겨진 이들에게 가장 확실한 안전핀을 건네는 현실적인 결단이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미래를 설계하는 한 기업인의 면모는 책임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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