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회담 성사 의지 연일 피력
김정은 대화 테이블로 유도 위해
‘핵보유국 인정’ 현실화 가능성
집권1기 때도 ‘톱다운’ 방식 선호
美 중간선거 앞두고 담판 절실
“더 직접 모든 의제 챙기려 할 것”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북·미 회담이 현실화된다면 목표, 의제, 방식 등에서 이전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연내 만남 의지를 강력히 시사하고 회담의 목표를 비핵화로 정의하는 것을 피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난다면, 이번엔 북한이 바라는 ‘핵보유국 인정’이 현실화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북한이 “57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밝혔다. 지난 4월 “약 45개”라고 한 이후 또다시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한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올 1월 기준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를 약 60기로 추산한 바 있다.
공개적인 발언에서 숫자를 과장해 말한 사례가 많아 숫자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전에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한 적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해서 핵무기 수까지 거론하는 것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 한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더구나 이번 발언은 본격적으로 북·미 대화 가능성을 띄운 시점에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할 수는 없다”면서도 “나는 김정은을 매우 잘 알고 있고 그는 괜찮을(fine) 것이다. (미국에) 똑똑한 대통령이 있는 한 그(김정은)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신이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통해 위협을 관리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유화적 발언일 수 있지만 결국 비핵화 목표가 흔들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로부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언급이 종종 나왔지만, 현재까지 미 당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핵심 대북정책임을 견지하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5월 14∼15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결과 팩트시트(설명자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은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유된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 교체기에 이 목표를 유지하는 데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작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을 후반기 국정운영의 중심 과제 중 하나로 삼는다면,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시간 내에 국내 유권자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정도의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는 데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9년 북·미 대화에서 미국은 북한이 핵물질과 핵무기, 모든 대량살상무기(WMD)까지 폐기하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과 대북제재 해제를 제공하는 ‘빅딜’을 주장했다. 이에 북한은 영변 핵시설 해체와 민생 관련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스몰딜’의 입장이었다. 7년 사이 북한은 핵능력을 크게 고도화하고, 중국·러시아 등으로부터 지원을 얻으며 ‘자강’을 강조해왔다. 제재 해제와 비핵화 조치를 교환하는 기존 방식의 협상 의제는 주요 의제로 부각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전력을 우선 더 늘어나지 못하게 동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제한하는 대신 경제·외교적 이익을 주는 거래를 추진하는 또 다른 내용의 ‘스몰딜’에 무게를 둘 수 있다.
무엇보다 집권 1기에도 실무선에서 협상 단계를 올려가는 ‘보텀업’보다는 ‘톱다운’ 방식을 선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더 직접 모든 의제 선정을 스스로, 갑작스럽게 하려 할 수 있다.
이미 미 조야의 대북 전문가들이 ‘현실론’을 내놓고 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지난 4월 워싱턴특파원들과 만나 “북한 비핵화는 단시일 내 달성이 어려운 목표가 됐다”며 “미국은 북한과의 ‘차가운 평화(cold peace)’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비핵화는 장기 목표로 두고, 군축 협상 등의 현실론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대북정책의 변화는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지형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한국을 사정권에 둔 전술핵·단거리 미사일 용인이 협상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직접 위협에 노출된 한국과 일본 등에서 자체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여론이 제기될 수 있다. 주한미군 주둔 등 미국의 대북 억제 태세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지역 안보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핵무기를 해체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양이 보유한 막대한 양의 핵분열 물질을 더 많은 핵탄두로 전환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핵무기 57개’라는 수치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확률은 이제 50대 50, 또는 그 이상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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