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0원씩 모아
전등 갈아주고 도배
농촌 배송업무하며
20년간 이어진 나눔
감나무가 빨갛게 익어가는 충북 영동군 양강면의 한 시골 마을에 가을 햇볕이 제법 뜨겁다. 한우송(57) 충북 영동우체국 집배원이 우편물 대신 페인트 롤러를 들었다. 평소 입는 집배원 조끼에 작업용 장갑을 끼고 낡은 집 외벽에 흰색 페인트를 덧칠했다. 몇 번이고 페인트 롤러를 움직이자 빛바랜 벽이 조금씩 하얀 새 옷을 입었다.
페인트 작업을 마친 한 집배원 손에 이번에는 예초기가 들려 있다.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집 앞 밭에 무성히 자라난 잡초를 제거하는 한 집배원의 이마에 금세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매번 너무 고맙죠. 자식도 저렇게는 못해요. 잡초가 길을 막아 감나무에 못 가서 걱정했는데 저렇게 깔끔하게 치워주니 얼마나 고마워요.” 제초 작업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일손을 잠시 멈춘 한 집배원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일회용 커피 한 박스와 재활용 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차에서 가져왔다. 곁에는 이 집에 홀로 사는 장경자(82) 할머니가 커피를 내와 같이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나눈다. 작업을 모두 마치고 떠나려 인사하자 할머니는 고맙다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한 집배원은 하루 평균 100㎞를 달리며 1200여세대에 우편물과 소포를 배달한다. 매일 같은 길을 달리고 같은 집의 대문을 두드리다 보니 어느 집에 홀몸 어르신이 사는지, 누가 몸이 불편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의 배달은 우편함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현재 지내고 있는 곳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좀 더 청결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에요. 전문적인 솜씨는 아니지만 도배, 장판, 페인트칠, 형광등 교체 등 나눔 실천에 소소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2006년부터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한 집배원도 처음부터 집수리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제대로 돕고 싶어 도배학원을 다니며 기술을 배웠고 페인트칠도 익혔다. 어르신들의 심리도 궁금하고 다양한 나눔과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2021년에는 건양사이버대학교 노인복지학과에 입학해서 사회복지 2급, 평생교육사 2급, 노인심리상담사 1급, 실버놀이지도사 1급, 웃음치료사 등 11개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2025년 졸업하면서 졸업생 한 명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명곡상”도 수상했다.
한 집배원은 봉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대부분 스스로 마련한다. 담배를 끊고 커피를 줄여 하루 5000원씩 모은 돈을 집수리와 어르신들 생필품 구입 등에 보탠다.
그가 유독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데는 중증 장애로 병원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잘 보살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홀몸 어르신에게 연탄 500장과 생필품을 전달하면서도 병석에 있던 어머니 생각이 나 마음이 더 쓰였다.
집배원은 지역의 골목과 집집마다 사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우편물이 쌓여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고, 평소와 달리 인기척이 없으면 한 번 더 대문을 두드린다. 한 집배원이 매일 달리는 100㎞의 배달 길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발견하는 길이기도 하다.
“작은 관심이 모여서 큰 관심이 되어 어르신들의 자존감과 삶의 질이 높아지면 우리 농어촌 지역도 좀 더 활력이 넘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르신들은 젊어 봤지만 우리는 아직 늙어 보지 못했잖아요.”
집을 비우고 근처 경로당에 가신 김순옥(88) 할머니 댁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던 중 해병대 출신인 한 집배원의 전화벨 소리 “팔각모 사나이” 군가가 힘차게 울렸다. 서울에 사는 유복적 할머니의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 어머니가 걱정이 된다며 걸어온 전화를 받고 한 집배원은 급하게 오토바이 핸들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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