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해발 118m 산 위에서 1200mm 망원렌즈를 꺼냈다. 북한 개풍군 들녘이 뷰파인더로 들어왔다. 누렇게 익은 논과 푸른 기가 남은 논이 번갈아 포개졌다. 벼를 베어 낸 띠 하나를 따라 열 명 남짓이 한 줄로 허리를 숙였다. 굽은 등들이 쉼표처럼 이어졌다. 지난 달 22일 강 건너의 가을은 굽은 허리 위로 분주하게 거둬지고 있었다.
벼를 걷어 낸 자리는 흙빛이었다. 붉은 윗옷과 파란 윗옷, 흰 수건을 두른 머리가 그 위에 점처럼 찍혔다. 사람들은 허리를 폈다가 다시 굽혔다. 줄 끝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렌즈가 당겨 온 것은 옷 색깔과 몸짓이었다. 논과 논 사이는 짙은 풀이 띠를 이뤄 층을 냈다.
개풍군 논 위에서 농기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렌즈에 들어온 트랙터는 한 대였다. 붉은 몸체에 초록 운전석을 얹었고, 바퀴 휠도 붉었다. 꽁무니에는 초록 짐칸을 매달았다. 옆 논에는 베어 눕힌 벼가 비스듬한 줄을 그었다. 그 줄 끝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래 논둑에서는 또 한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머지는 소가 끌었다. 볏단을 둥글게 쌓아 올린 달구지 두 대가 논두렁 길 위에 있었다. 달구지마다 앞머리에 사람이 하나씩 올라 앉았다. 흰 옷 차림의 한 명이 그 곁에 섰다. 화면 오른쪽 끝에는 세 번째 달구지가 걸렸다. 돌로 쌓은 둑 끝 시멘트 기둥 아래에는 흰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 명은 파란 짐을 들었다.
흰 모자와 수건을 쓴 너덧 명이 무리 지어 논 사이를 걸었다. 흰 옷 차림 한 명은 무리에서 몇 걸음 떨어져 따랐다. 붉은 옷과 흰 옷이 섞인 또 다른 무리는 논둑을 따라 한 줄로 지나갔다. 둑길 위로는 한 사람이 혼자 걸었다. 그 아래 흙길은 논을 비스듬히 가르며 흰 단층 건물 앞까지 이어졌다.
들판 사이사이에는 드물게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강가 숲 위로 2층짜리 초소가 솟았다. 지붕에는 흰 공 모양의 장비가 얹혔고, 벽은 넝쿨이 타고 올랐다. 그 아래로 철조망을 받친 말뚝이 늘어섰다. 초소 너머 논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걸었다. 논 가운데 낮은 시멘트 건물은 담쟁이에 반쯤 덮였다. 담쟁이 잎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곁에서도 농부가 허리를 숙였다.
전망대 앞마당에는 ‘망배단’이 있다. 명절이면 실향민들이 이곳에서 강 건너 고향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으로 소리는 들을 수 없다. 들판의 말소리도, 달구지 바퀴 소리도 화면에는 없다. 다만 추수하는 부지런한 동작으로 이들의 하루를 가늠한다. 강 하나 너머, 허리로 거두는 가을이 있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본격 가동된 메카공동방위협정](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10/06/128/20261006519599.jpg
)
![[데스크의 눈] ‘조국의 무궁한 영광’과 병역특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10/06/128/20261006519607.jpg
)
![[오늘의시선] 대통령은 어디까지 챙겨야 하나](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10/06/128/20261006519591.jpg
)
![[안보윤의어느날] 좋아함을 좋아함](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10/06/128/20261006519537.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