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원에 사둔 와인 한 병이 시간이 흘러 1억원을 호가하는 희귀품이 됐다. 집에 양문형 냉장고 크기만 한 대형 와인셀러를 두고, 레드와인부터 위스키와 샴페인까지 150병에 달하는 고급 주류를 수집하는 연예계 대표 ‘술테크(술+재테크) 전설’.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조명된 배우 이수경(44)의 일상은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화려함 그 자체다.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는 예능 방송 직후 포털과 모바일 피드는 ‘10배 시세차익’, ‘억대 와인’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도배됐다. 사람들은 그가 쥐게 된 거액의 숫자에 열광했고, 부러움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 속 자극적인 수치 뒤편에는, 서울 청담동과 이태원에서 연이어 사업을 접어야 했고 원인 모를 질병으로 주연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던 한 인간의 시리고 치열했던 삶이 숨어있다.
대중들에게 이수경이라는 이름은 영화 ‘타짜’ 속 주인공 고니(조승우 분)의 화사한 연인 ‘화란’이나, 수많은 주말드라마에서 세련된 알파걸을 연기하던 도회적인 배우로 기억된다. 화면 속 그는 언제나 하이톤의 명랑한 웃음을 터뜨리며 세상의 그늘이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카메라의 불이 꺼진 현실 속 삶은 잇따른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술을 좋아했던 그는 젊은 시절 의욕적으로 자영업에 발을 들였다. 청담동에 이자카야 선술집을 차렸고, 이태원에 80평 규모의 대형 브런치 카페까지 열었다. 경영에 대한 세밀한 전략 없이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의 결과는 참담했다.
촬영 스케줄에 치여 현장을 돌보지 못하는 사이 매장은 휘청였고, 1년 만에 수억원대의 손실과 실패라는 주홍글씨를 안은 채 문을 닫아야 했다.
진짜 시련은 몸으로 터져 나왔다. 사업 실패의 극심한 스트레스는 면역 체계를 무너뜨렸고, 얼굴과 온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성 피부병이 번졌다. 배우에게 생업과도 같은 얼굴이 망가지면서, 한창 주연으로 활약하던 드라마 현장에서 조용히 하차 통보를 받아들여야 했던 수모를 겪었다.
화장대 거울을 보는 것조차 공포였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찾아왔다. 완치에만 꼬박 2년이 걸린 강제 공백기 동안, 그는 “이제 내 배우 인생은 끝난 게 아닐까”라는 깊은 절망과 싸워야 했다.
그 쓰라린 밑바닥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엄청난 투자가 아니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집 안 구석에서 나지막이 시작한 아주 작은 취미였다.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타인의 시선을 좇지 않기로 한 그는, 예쁜 유리잔을 모으고 직접 나무 테이블을 짜며 주방 한쪽에 작은 ‘술방’을 가꿨다.
당시 수백만원을 주고 사두었던 와인들은 투기 목적이 아니었다. 고단한 하루 끝에 자신을 위로하는 소소한 낙이자, 훗날 좋은 날을 기약하는 소박한 기대였다. 세월이 흘러 그 와인들이 억대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은, 요행을 바란 결과가 아니라 애정을 쏟은 시간을 묵묵히 버텨낸 자연스러운 부산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억대 시세가 알려진 이후 그가 보인 태도다. 주변에서는 당장 현금화하라고 부추기지만, 그는 단칼에 손사래를 친다. “16년 뒤 내 환갑잔치에서 진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개봉해 마실 것”이라며 웃어넘긴다. 눈앞의 현금에 목을 매는 세상에서, 그는 자신이 아끼는 가치를 물질로 바꾸지 않고 오롯이 미래의 기쁨으로 저장해 두는 길을 선택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누군가가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수억원을 벌었다는 소식에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24년 차 배우 이수경이 걸어온 궤적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진짜 자산은 통장 잔고의 숫자가 아니라, 사업이 망하고 병마가 덮쳐 삶이 무너져 내렸을 때 이를 어떻게 덤덤하게 다스렸느냐는 ‘삶의 태도’다. 수억원의 손실과 우울증을 견뎌낸 단단한 내면이 있었기에, 그는 1억원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유유히 지켜낼 수 있었다.
지금 찬장 속 와인셀러를 가만히 정돈하는 이수경의 눈빛에는 거친 풍파를 제 힘으로 건너온 사람 특유의 편안한 여유가 느껴진다. 16년 뒤 그의 환갑 잔칫상에서 개봉할 1억원짜리 와인은 단순한 고급 술이 아니라 한 인간이 묵묵히 견뎌낸 시간에 대한 가장 값진 훈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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