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송정동, 성수동 카페거리와 인접한 4층짜리 단독주택 건물 1층에서는 매일 고소한 디저트와 커피 향이 풍겨 나온다. 모자와 마스크를 눌러쓴 여성이 테이블을 부지런히 닦고, 수세미를 들어 구석구석 설거지를 해치운다. 가끔 알아보는 손님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이 카페의 주인은 다름 아닌 가수 권은비다.
권은비가 2024년 24억원에 매입한 이 건물은 최근 연예계와 부동산 시장 양쪽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보통 연예인들이 건물을 사들이면 고액의 임대료 수입이나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지만, 권은비의 건물 활용법은 전혀 달랐다.
최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출연한 권은비는 자신의 건물 내부 구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1층은 직접 운영하는 카페, 3층은 일반 세입자 공간이다. 눈길을 끈 건 남은 2층과 4층이었다. 건물 공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이 두 개 층은 오랫동안 현장에서 함께 발로 뛰어온 매니저들의 보금자리로 쓰이고 있었다.
임대 조건은 더욱 놀라웠다. 권은비는 이들에게 월세를 일절 받지 않고, 건물의 최소 유지 관리비 수준만 받고 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매니저들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생활을 하다 보니 월세 부담이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며 “새벽과 주말도 없이 나와 고생하는 친구들인데, 조금이라도 편안한 환경에서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준 것”이라고 답했다.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는 그를 향해 ‘여자 서장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서울 주요 입지의 건물을 소유한 방송인 서장훈이 주변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를 유지하며 ‘착한 건물주’로 불린 것에 비유한 것이다. 서장훈 역시 방송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며 권은비의 미담에 고개를 끄덕였다.
권은비의 이러한 행보는 단순히 번듯한 건물을 가지게 되면서 시작된 일시적 과시가 아니다. 아이돌로 화려하게 조명받기 전, 그의 과거는 치열한 생계의 연속이었다.
학창 시절 가수의 꿈을 품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 한 살 터울의 친오빠가 고등학생 나이에 알바비를 털어 동생의 입시 학원비를 보태줬다. 데뷔 무산과 길어진 연습생 시절에도 그는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편의점, 빵집, PC방을 전전하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냈다. 당시 그가 성실히 일했던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빵집은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성지’로 통한다.
서울살이의 서러움과 다달이 찾아오는 월세의 중압감을 몸소 겪어봤기에, 권은비는 자신과 밤낮으로 고생하는 매니저들의 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훗날 역주행 신드롬으로 정상에 오른 뒤 오빠의 결혼식 비용 전액을 흔쾌히 부담했듯, 스스로 겪어낸 결핍과 온기를 매니저들에게까지 확장해 나간 셈이다.
그렇다고 감정에만 쏠려 자산을 운용하는 것도 아니다. 권은비는 노후 대비를 위해 발품을 팔며 서울 시내 여러 지역을 직접 임장한 끝에 송정동의 가능성을 보고 건물을 매입했다. 현실적인 투자 감각을 발휘하면서도, 그 공간을 채우는 방식에서는 숫자의 계산보다 사람과의 신뢰를 우선시하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단순히 통 큰 재력을 자랑하는 ‘플렉스’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그 속에서 무명 시절의 고단함을 잊지 않고, 자신이 일군 성과의 결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권은비의 선행은 신선한 울림을 전한다. 자산의 가치를 돈의 수치로만 환산하지 않고 사람을 향한 진정성으로 채워나가는 모습이야말로 대중이 그의 선택에 깊이 공감하고 신뢰를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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