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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묻지마 살인’ 괴물을 만들었나

입력 : 2016-08-26 20:52:22 수정 : 2016-08-26 20: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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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장·학교서 벌어진 살인사건 추적
신자유주의 의한 잔혹한 경쟁·기업문화…
집단살인의 광기로 몰아간 사회구조 고발
총기만 없을 뿐… 한국사회에 남다른 경종
마크 에임스 지음/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2만2000원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마크 에임스 지음/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2만2000원


“모두 그를 지지했어요. 모두 그가 어디서부터 그렇게 됐는지 이해했어요. 그의 유일한 문제라면 엉뚱한 사람을 쐈다는 거죠.”

‘그’의 이름은 조셉 웨스베커. 1989년 9월 14일 다니던 회사에서 총을 난사해 7명을 죽였고, 2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웨스베커의 살인을 이해한다는 듯한 투로 말하는 이는 마이클 캠벨이다. 캠벨은 웨스베터의 총에 맞아 장애을 갖게 된 부상자 중의 한 명이다.

집단살인의 당사자는 흔히 ‘괴물’로 묘사되며 그들이 저지른 짓은 “폭력적인 미친놈이 격분해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 별종이 느닷없이 폭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런데 사건의 피해자인 캠벨이 이해 운운하고 있다. 무엇을 이해한다는 걸까.

집과 더불어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직장과 학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한 저자는 살인자들을 광기로 몰아간 사회구조를 고발한다. 그것은 “레이거노믹스(미국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 정부지출 삭감, 세금 인하, 규제 완화 등이 핵심으로 반노동·친기업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아래 두드러지기 시작한 잔혹한 신기업 문화”, “잔혹한 경쟁을 최상위 자리에 둔 학교 문화”이다. 이런 문화는 “사람들을 압박해 정신이상으로 몰고 가는 문화가 어디까지 갔는지를 상기시키는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미국의 한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를 구급대원들이 이송하고 있다.(왼쪽) 총격 사건 현장 주변에서 주민들이 서로 끌어안으며 위로하고 있다. 왕따, 극심한 경쟁, 날로 악화되는 노동조건 등은 집단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을 일으키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웨스베커는 스탠더드 그라비아라는 인쇄소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일을 했다. 그는 입사 후 9년이 지났을 즈음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다른 업무에 배치해 달라고 회사에 호소했다. 누가 봐도 공장 최악의 업무였고, 웨스베커의 근무상황을 조사한 공공기관에서도 해당 업무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웨스베커의 업무 차별 제소를 담당한 준법 감시관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며 이 일을 맡겨서는 안 됐다. 하지만 회사 관리들은 위협까지 해가며 일을 맡게 했다”고 증언했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회사가 직원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예스럽고 별난 관념이 되어가고 경쟁과 주주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도덕이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인간관계에 서툴러 회사에서 아웃사이더이기도 했던 웨스베터는 동료들의 잔인한 태도와 회사를 지배하는 경영 문화 사이에서 쥐어짜이다 사표가 아닌 총을 들고 회사를 찾아 폭주했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미국에서 최상위 공립학교로 꼽히는 새러토가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폭파 모의 사건을 소개한다. 16살의 학생이 과학실에서 폭발성 화학물질을 훔쳐 “학교를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한 사건이었다. 놀라운 것은 학생, 교직원 대부분이 이 사건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시험 부정행위 스캔들에 훨씬 더 심란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폭탄 모의는 용의자 학생에게만 국한된 문제였지만 부정행위 스캔들은 학교의 학업 평판을 더럽히는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새러토가에서 경쟁과 분투는 비정상적인 정도로 커져 이젠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다”고 분석한다.

직장, 학교에서의 집단살인 혹은 집단살인의 모의는 부적응자의 광기이지만 제도로서의 직장, 학교와 그 문화를 공격 대상으로 한 극단적 형태이기도 하다. 살인자들은 직장, 학교 자체, 즉 고통의 원천을 파괴하려고 한 것이다.

미국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지만 읽다보면 한국의 현실과 정확하게 겹친다. 웨스베커가 경험했던 직장 내 왕따, 냉혹한 기업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진작부터 있었고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새러토가의 현실은 어떤가. 학업평가가 좋은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한 경쟁이 부동산 가치의 증가로 이어져 학부모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학교에서의 경쟁하면 한국은 세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미국과 다른 점이라고는 총과 폭발물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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