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가 어제 본회의를 열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한국 증시의 고질적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하자는 취지다. 여당에서는 “코스피 5000시대를 여는 첫걸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소송 남발과 투자 위축,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처럼 기업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가득해 걱정이 크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3%룰)하는 게 핵심이다.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전환하고 전자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앞서 경제단체가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로 명시하고 이사의 책임을 제한 또는 면책해 주는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 달라고 읍소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귓등으로 흘렸다.
재계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비명이 터져나온다. 당장 이사를 상대로 한 주주들의 손해배상·배임 소송이 넘쳐날 게 자명하다. 이사회 안건마다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하는 건 불가능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조차 주주의 이익과 상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위원 자리에 행동주의 펀드나 경쟁사 등 적대세력이 들어와 회사 기밀이나 영업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기업가정신은 사라지고 위험을 회피하는 보수적 경영 행태만 만연될 소지가 다분하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투자나 인수합병 등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번 개정안에서 빠졌지만,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까지 도입된다면 이사회가 아예 통째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여당은 일단 해보고 부작용이 있으면 수정·보완하겠다고 했지만 기약이 없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소송 남발과 경영권 공격 탓에 기업의 투자·고용 여력이 쪼그라들고 경제 충격과 국민 고통도 커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주주 권한이 커진 만큼 그에 상응해 기업에도 경영권 보호수단을 주는 게 합리적이다. 선진국처럼 지배주주에게 의결권을 더 주는 차등의결권이나 주요 경영 사안에 거부권이 있는 황금주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용 논란이 많은 배임죄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