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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페이스메이커의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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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02 23:11:52 수정 : 2025-09-02 23:11:50
이귀전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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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페이스메이커로 시작해 ‘1위’
韓, 대북 해법 주연 아니어도 돼
한반도 평화 목표 달성 ‘최우선’

“나와 문재인 대통령은 북남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의 여정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소중한 결실을 만들어냈습니다.”

“나와 함께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이귀전 외교안보부장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5·1 경기장에 함께 입장하자 15만명가량의 북한 주민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공연 후 남북 지도자는 평양 시민 앞에서 인사말을 하며 내일 당장 통일이 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음날 함께 백두산에 오른 뒤 문 전 대통령은 “이번에 제가 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좀 썼지요”라고, 김 위원장은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또 써나가야겠다”며 남북 관계의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국의 주도성을 강조한 문재인정부의 ‘운전자론’이 힘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평양 5·1 경기장에 설 때부터 불안감은 컸다. 북한의 대접이 화려할수록 원하는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북한의 기대를 맞춰줄 수 있을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김 위원장의 한국 방문조차 가능할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냉정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마냥 남북 정상 간 만남에만 취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1년도 지나지 않아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2019년 8월)’란 말을 들으며 남북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고 한반도 운전석은 방치됐다.

6년이 지나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를 들고 나왔다.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 평화의 새 길을 꼭 열어 주시기 바란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운전석에 앉게 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상황이 정말로 많이 나빠졌다. 저의 관여로 남북관계가 잘 개선되긴 쉽지 않은 상태”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내놨다. 노벨평화상을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다.

문제는 트럼프 1기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북한이 쉽게 동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립돼 있던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그사이 북한은 핵무력 증강에 집중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러시아라는 ‘뒷배’가 생겼다. 김 위원장은 3일 중국 전승절 참가로 다자외교 무대에 진출해 정상국가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용 외교’를 강조한 이재명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선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과거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선제적으로 대북 방송 중단, 확성기 철거 등으로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한 뒤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한국과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한 이재명정부가 5년 임기 내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조치를 취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적극 임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북한이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도 방편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방이 된다면 체제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페이스메이커지만 우리가 그 변화를 포착해 한반도 평화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라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도 처음엔 페이스메이커로 시작했다. 5000m, 1만m 장거리 선수였다가 우연한 기회에 마라톤 경주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한 뒤 경험을 쌓고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는 다른 동료들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 뒤 우승 경쟁에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은 언제든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운전자가 누군지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다.


이귀전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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