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데스크의 눈] 말의 무게

관련이슈 데스크의 눈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9-16 22:58:38 수정 : 2025-09-16 22:58:37
정재영 사회부장

인쇄 메일 url 공유 - +

‘내란재판부는 위헌 아니다’는
대통령 한마디에 나라가 시끌
대법원장 사퇴론에 억측 난무
국민을 아우르는 통치자 돼야

말은 사람을 규정하고 관계를 만든다.

세상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서운한 말 한마디가 생명을 앗아가는 사건의 시작인 적 있다. 흔하게는, 술자리의 소소한 언쟁이 다툼이 되고, 부부 싸움의 근원은 기억조차 안 나는 어제, 좀전의 말 한마디인 적 많다. 말을 내뱉고 이해하는 양측 간 생각·반응 차이 탓이다. 대화가 멈춘 자리에는 억측이 스며늘고 논란을 빚는다. 입을 닫고 살면 갈등이 덜 할까 싶다가도 공기 사이로 음파(音波)를 주고받지 않는 삶에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다. 일상에서 말로 빚은 오해는 한쪽의 노력, 때론 시간의 흐름만으로 치유되곤 한다.

정재영 사회부장

말로 인한 어떤 갈등은 삶에 영향이 없는 듯싶다. 오래 풀리지 않은 오해에도 친구·동료와 만나거나 일하는 데 지장 없을 때가 많다.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은 가족·지인에 힘들게 사과하지만, 범인(凡人)의 말은 파장이 크지 않다는 데 안도한다.

일면식 없지만 그들이 남긴 말에 ‘친추’한 페친들이 많다. 이유는 모르나 8년 전에도 16일에도 대법원장 구속을 외치는 페친도 있다. 그의 성향을 다 알고 싶지도,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삶을 대하는 태도 등에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며 소소하게 교류하면 그뿐이다.

같은 말이라도 내뱉는 사람에 따라 무게감은 다르다. 선출 권력 최고봉인 대통령은 더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특별재판부가 위헌이 아니라고 말한 뒤 온나라가 떠들썩하다. 그 과정에 조희대 대법원장 책임론까지 나왔다. 페친은 왜 같은 주장을 했을까.

내란특별재판부는 7월 더불어민주당 당권 다툼 시 박찬대 의원이 내놓았다. 큰 주목을 못 받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부상했고, 정청래 의원이 당대표 당선 3일 뒤(8월5일) 김어준씨 유튜브에서 “판사들이 내란 종식의 걸림돌·훼방꾼이라고 국민이 생각하면 당연히 특검처럼 특별재판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고 공식화했다.

법조계에선 위헌 논란이 일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사법독립 침해’라는 의견서를 내자,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이 14일 페북에서 조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했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날 “특별한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시대적, 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는 그 요구에 대한 개연성과 그 이유에 대해서 좀 돌이켜봐야 될 필요가 있지 않나라는 점에서는 아주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해 파장이 커졌다.

법무장관 출신 추 위원장은 5월부터 “내란범 내란수괴를, 조희대 부하가 옥문을 열어주는 결정을 할 때 이미 다 계획이었구나 하는 눈치를 챘어야 했다”며 사퇴를 주장했는데, 주식 파문으로 탈당한 이춘석 의원 자리를 넘겨받고 목소리가 더 커졌다. 대통령실이 16일 대법원장 거취를 논의한 적도 그럴 계획도 없다고 물러섰지만 파장은 남았다.

독재정권도 대법원장 사퇴를 공개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선 전 이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회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게 트리거라는 억측이 나돈다. 내란 수괴를 파면한 헌법재판소는 괜찮고 이 대통령에 유죄 판단을 한 대법원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으로, 몇 달째 유튜브를 달군 억지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이런 억측의 증폭제가 됐다. 대상이 뭐든 곧 시행될 정책 등에 위헌 논란이 예견된 상황에 대통령의 합헌 언급은 헌재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어 부적절하고 부당하다. 국민과 입법부, 사법부 등을 선출·임명 기준으로 서열화하면 삼권분립은 무용(無用)하다.

돈벌이탓에 다양한 사고를 극단화하고 갈등을 부추겨 한쪽 지지를 갈구하는 유튜버와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드는 정치인 말의 무게가 같을 순 없다. 특히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며칠씩 세간을 맴돌며 새로운 시선과 정책을 꿈꾸게 한다. 차별적 입법이나 위헌적 단죄로 향하면 국민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4년 연임’ 개헌이 국정 1호 과제로 16일 확정됐다. 며칠간의 헌법 논란이 여기서 비롯한 게 아니기를, “전체 국민을 아우르고 함께 가는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 발언에 무게가 실리길 바란다.


오피니언

포토

아이들 슈화 '반가운 손인사'
  • 아이들 슈화 '반가운 손인사'
  • 신예은 '매력적인 손하트'
  • 김다미 '깜찍한 볼하트'
  • 문채원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