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트럼프 발언은 농담일 뿐”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한 가운데 정작 호주 언론의 시선은 케빈 러드(68) 미국 주재 호주 대사한테 쏠렸다. 러드는 호주 총리만 두 차례 지낸 거물급 공관장이지만 트럼프가 그를 싫어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이날 앨버니지와 트럼프의 정상회담은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나, 호주 여야는 러드를 계속 주미 대사 직위에 둬야 하는지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
20일(현지시간) 호주 매체 컨버세이션(Conversation)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앨버니지와 함께한 정상회담 자리에서 취재진으로부터 ‘주미 호주 대사의 과거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러드가 야인이던 시절 트럼프를 겨냥해 ‘서구의 반역자’, ‘파괴적인 대통령’ 같은 표현을 써가며 맹비난을 퍼부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처음에 트럼프는 러드가 앨버니지 곁에 있는지 미처 몰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앨버니지에게 “(주미 호주 대사가) 어디에 있나요”, “아직도 호주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나요” 등 질문을 던졌다. 앨버니지가 러드를 가리키자 트럼프는 “당신(러드)이 나에 관해 험담을 했다고요”라고 물었다. 이어 “나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마도 그런 일은 영원히 없을 거예요”라는 차가운 반응을 보인 다음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컨버세이션은 나중에 러드가 직접 트럼프한테 정중한 사과를 했고, 트럼프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발언을 두고 호주 정가는 둘로 갈라졌다. 야당인 보수당은 트럼프가 싫어하는 러드를 즉각 주미 대사직에서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드는 2013년 생애 두 번쨰로 맡은 총리 자리에서 불과 3개월 만에 하차한 직후 정계를 떠나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로 옮겼다. 거기에서 중국 전문가로 활동하며 트럼프에게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다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3년 3월 같은 노동당 소속인 앨버니지에 의해 주미 대사라는 중책에 발탁됐다.

보수당은 2024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직후부터 주미 대사 교체를 강력히 촉구했다. “트럼프와 악연이 있는 러드로는 대미 외교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앨버니지는 줄곧 ‘러드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날도 앨버니지의 핵심 측근인 페니 웡 외교부 장관은 러드가 호주·미국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큰 기여를 했다며 그를 적극 옹호했다. ‘나는 러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트럼프의 직설적 발언을 두고 웡 장관은 “그저 우스갯소리이자 농담일 뿐”이란 평가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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