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국가’ 印尼 금융시장 매력적이지만
은행 과점·높은 부실채권·규제 장벽 부담
진출한 국내 금융사들 적자 늪에서 고전
최근 사업구조 대대적 손질 입지 넓혀가
KB금융, 현지인 사령탑 내세워 전략 개선
인력 감축·내부 통제 강화로 수익성 개선
2026년 흑자 눈앞… 금융지주사 설립 속도
IB 경쟁력 확대·고객 친화적 MTS 강화
인도네시아는 K팝과 K드라마, K푸드 열풍이 20년 넘게 이어진 한류 확산의 핵심 거점이지만, 금융사들엔 한때 ‘해외 금융사의 무덤’으로 불렸다. 2억9000만명의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갖춘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국영은행과 대형 민간은행 중심의 과점 구조, 치열한 경쟁, 높은 부실채권(NPL) 부담 등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금융사들도 인도네시아 진출 이후 현지 당국의 까다로운 규제 속에 적자를 이어가는 등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한국 금융사들이 철저한 현지화와 리스크 관리 역량을 앞세워 ‘K금융’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KB금융그룹은 은행과 증권을 양축으로 강력한 내부통제와 수익성 중심의 체질 개선을 이뤄내며 현지 진출 국내 금융사 최초로 금융지주사 설립까지 추진하고 있다.
◆‘한류 열풍’은 인니시장 영업에 장점
지난달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난 쿠나르디 다르마 리에 KB뱅크 인도네시아 은행장은 “숫자(성과)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해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쿠나르디 행장이 지난해 5월 KB뱅크의 사령탑으로 취임할 당시 회사는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KB국민은행이 2018년 인도네시아 현지 부코핀은행(PT Bank Bukopin TBK) 지분 20%를 확보한 뒤 2020년 유상증자를 통해 67.57%까지 끌어올려 최대주주로 올라선 지 5년이 지났지만, 회사는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한국 은행들 역시 인도네시아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경쟁적으로 진출했지만 번번이 고전했다. 거래 상대방이 허위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는 등 부실이 있었지만 이를 운영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등 내부통제 부실이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금융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금융 인프라와 리스크 관리 체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외국계 금융사 입장에서는 건전성 관리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쿠나르디 행장은 “KB국민은행이 인수한 이후 그동안 양적으로 승부하던 영업을 질적 성장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그 덕분에 NPL 비율이 낮아졌다”며 “아울러 영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 덕분에 거버넌스가 업그레이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KB뱅크의 운영 전략 관점도 크게 변화했다고 강조했다. 쿠나르디 행장은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세일즈 뱅킹(Sales Banking)에 집중하면서 우량한 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특히 KB뱅크를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하는 기업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KB뱅크의 여신 관련 매출과 비이자 부문, 외환거래 관련 수익도 늘었다. 2022년 8021억원에 달하던 순손실(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 K-IFRS)은 지난해 683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지난 25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인도네시아 회계 기준으로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순이익 665억9000만루피아를 기록하며 흑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한국회계 기준 K-IFRS로는 아직 적자지만, 곧 흑자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쿠나르디 행장은 “올해 3월에는 인도네시아 회계 기준으로 흑자 전환한 데 이어 내년에는 한국회계 기준으로도 흑자 달성에 성공할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내부통제 강화가 ‘순이익’ 성장의 핵심
KB금융그룹은 KB뱅크 인도네시아의 정상화와 함께 KB발부리증권의 선전을 발판 삼아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 최초로 금융지주사 설립도 추진 중이다.
지난 1일 자카르타에서 만난 이태엽 KB발부리 증권(KB Valbury Sekuritas) 대표는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Otoritas Jasa Keuangan)이 선진금융 시스템인 한국의 금융지주 모델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면 내년에는 KB뱅크 밑으로 중간지주사가 탄생하고 그 아래 증권과 보험, 카드 등이 손자회사로 들어가는 지주사 체계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금융지주 모델을 도입하려는 건 한국의 금융이 선진금융이라는 평가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주요 증권사들이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의 인도네시아 법인 ‘세쿠리타스’(2013년 진출)는 주식거래대금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KB증권이 지분 65%를 보유한 KB발부리 증권도 2022년 인수 이후 줄곧 흑자를 내고 있다.
KB발부리 증권은 2022년 순이익 204억원을 기록한 이후 △2023년 202억원 △2024년 247억원 △2025년 342억원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순이익은 2022년 대비 68% 증가한 수치다. 덕분에 현재 핵심 수익원인 채권자본시장(DCM) 비즈니스에서 인도네시아 내 88개 증권사 중 15위를 차지했던 순위는 올해 6월 7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KB뱅크가 성장 동력으로 삼고 가장 집중하는 것은 실적보다 리스크 관리다. 앞서 내부통제 문제로 NH투자증권 인도네시아 법인이 올해 초 기업공개(IPO) 주관업무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 등 국내 금융사들이 고전하고 있어서다.
이 대표는 “KB증권이 경영권을 확보한 이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 리스크 관리”라며 “인수 이후 법인장 직속의 리스크 협의체(REMC)를 만들어 법인장과 등기이사급들이 다 같이 회사의 리스크에 대해 들여다보는 체제를 확립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존 발부리 증권이 개인주식 영업에 집중했다면 KB증권이 인수한 이후로는 기업금융(IB) 수익 비중이 20%까지 올라섰다”고 말했다.
그는 “KB증권이 인수한 이후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등 주요 내부통제부서에 대한 자원을 보강하고 담당 직원들에 대해 외부 위탁기관을 활용해 전문교육을 시키고 있다”며 “내부통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해당 분야에 대해 인적, 물적 투자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증시에 대한 대외적 신뢰 하락도 KB발부리 증권이 내부통제를 강화하게 된 요인 중 하나다. 최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인도네시아 증시의 투자 적합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대표적으로 △시장 접근성 제약 △낮은 유통주식 비율 △지분구조 불투명성 등을 핵심 과제로 지적했고 현재 인도네시아에 주어진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 지위를 유지할지 여부를 올해 11월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시장 불확실성이 대두되자 올해 1월 9000을 넘었던 자카르타 종합주가지수(JCI)는 지난 13일 기준 6000대로 내려앉았다.
인도네시아 증시가 신뢰를 쌓고 약 2억9000만명의 인구 중 아직 3%(920만명)에 불과한 주식투자 인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주식투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과제다. 이 대표는 “주식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고객이 대부분 사용하는 매체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라며 “MTS를 더욱 고객 친화적으로 발전시켜 초보 투자자도 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증권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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