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제자 자부하며 DJ 결단과 반대로
당심도 돌아선 보완수사권 폐지론
이름은 상속됐는데 정신은 어디에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후보들 사이에 왕조 시대를 방불케 하는 ‘적통(嫡統)’ 논쟁이 한창이다. 정청래 후보는 노무현의 계승자임을 자처한다. 그는 ‘노사모’(노무현을사랑하는모임) 멤버였고, 노무현정당인 열린우리당을 통해 정치권에 입성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김민석 후보가 노무현을 버리고 정몽준을 편든 ‘철새’ 이력을 수시로 거론한다. 노무현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김 후보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전술적 공세일 것이다. 정 후보가 노무현 곁을 지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계승자가 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노무현의 가치와 노선까지 이어받아야 그의 말이 설득력을 지닌다.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기간 국익과 민생을 위해 지지층과의 갈등을 피하지 않았다. 지지층이 결사반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 과정에서 당내 분열과 지지율 하락을 감수했다. 진보의 도그마에 갇히지도 않았다. 시민운동가 시절엔 ‘외채망국론’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반대했지만, 대통령이 돼선 개방론을 수용했다. 지지층과 싸우는 길이었다. 노무현은 대통령 퇴임 후 내놓은 회고록에서 진보 진영을 향해 “정책은 과학적 검증을 통해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고언을 던졌다. 공허하게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돼서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면 안 된다고.
정 후보는 노무현의 고언과는 반대로 갔다. 과학적 검증 대신 교조적 이론에 매몰된 탈원전 정책을 추종했고,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고 나랏빚을 400조원가량 불리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일조했다. 당대표가 돼서는 ‘당원 주권주의’를 주창하며 민심 아닌 당심을 좇았고, 이제는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노무현 계승자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김 후보 쪽은 어떤가. 그는 “DJ(김대중) 노선에서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할 때 36세의 그를 당 총재비서실장에 앉히고 총선 인재 영입과 공천 실무까지 맡겼으니 각별한 신임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DJ의 유산 역시 결단의 기록이다.
DJ는 외환위기라는 파도를 넘기 위해 지지 기반인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를 도입했다. 노조를 밤새 설득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함께 가지라고 했던 그의 말은 현실감각만 챙기라는 뜻이 아니었다.
김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보완수사권 ‘예외적 존치’ 입장에 동조하는 듯하더니 당권 도전 이후엔 ‘폐지 불가피’로 돌아섰다. 당대표 선출권의 70% 지분을 가진 권리당원의 표 앞에서 소신을 접은 것이라고 짐작한다. 서생적 문제의식은 버리고 상인의 현실감각만 상속받은 반쪽 제자다. DJ가 살아 돌아온다면 어떤 평가를 했을까.
최근 갤럽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보완수사권 유지(46%)가 폐지(39%)보다 높았다. 전체 여론은 유지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당권 후보들은 폐지를 합창한다. 폐지의 비용은 국민이 치른다. 그 피해자의 시간은 누가 책임지나. 계승을 외치는데, 계승할 정신이 없다. 계승자를 자처하는데 계승의 증거가 없다. DJ와 노무현에 대한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두 후보는 저마다 자신이 당대표가 돼야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현실은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2015년 영국 노동당은 당대표 선거에서 3파운드(대략 6000원)만 내면 투표권을 주는 ‘등록지지자’ 제도를 도입했다. 3파운드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투표권을 얻는 데 필요한 최소 금액 수준이다. 그러자 수십만명의 강경 지지층이 등록지지자가 돼서 민심과 동떨어진 강성 좌파 제러미 코빈을 당대표로 밀어 올렸다. 노동당은 2019년 총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코빈의 전철을 답습할 수 있다.
두 후보에게 없는 한 가지는 이것이다. 지지층과 맞서서라도 국민을 택하는 용기. 두 후보가 진정 적통을 다투고 싶다면 스승들이 했던 그 일을 한 번이라도 해 보기 바란다. 그것이 적통의 유일한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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