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계기로 당내 세력화 움직임
‘반탄’ 외치는 극우 유튜버 손잡고
법치 기반한 보수 재건은 공염불
보수 유튜버 전한길씨가 “우파의 ‘개딸’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개딸(개혁의 딸)’은 이재명 대통령을 추종해온 강성 지지층을 부르는 명칭이다. 이 대통령이 온갖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강성 지지층의 전폭적 지원 아래 당을 장악하고 입법·행정 권력을 차지했으니 보수도 이를 본받자는 것이다. 전씨는 우파의 개딸 격인 아스팔트 우파 세력을 향해 국민의힘에 들어가 당을 접수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국민의힘 당권 후보에게는 공개 질의서를 보내서 자기 노선에 맞는 후보를 지원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선봉장인 전씨의 이른바 ‘우파 개딸’ 구상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전씨는 “추종자 약 10만명이 이미 입당했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에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전씨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반탄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국민의힘 당원이 돼서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렇다고 전씨의 구상이 실패할 것이란 근거도 없다. 계엄과 탄핵, 대선 패배로 길을 잃은 한국 보수는 절박한 처지다. 진보의 팬덤은 2007년 대선 완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거치며 강성 지지층으로 변해갔다.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분노가 그렇게 몰아갔을 것이다.

지금 보수도 ‘폐족(廢族)’이 됐다는 열패감과 이재명정부에 대한 적대감이 뒤범벅돼 있다. 아스팔트 우파가 국민의힘 안으로 스며들기엔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다. 때마침 국민의힘 당권 경쟁은 찬탄파와 반탄파의 대결 구도로 짜였다. 반탄 진영의 김문수 전 장관이 당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전씨 추종 집단이 당내 세력화에 나설 명분이 생겨났다. 김 전 장관도 전씨의 공개 질의서에 답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전씨는 이번 전당대회를 우파 개딸 시대의 서막으로 만들겠다는 시나리오를 썼다.
좌우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은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그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강성 지지층이 민주당을 접수한 이후로 ‘민주’는 사라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추종했던 강성 지지층인 ‘문빠’는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란 말을 들었다. 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낸 의원들은 왕따가 됐다. 소신파는 문 전 대통령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이라고 표현한 문자 폭탄을 받고 당의 징계를 받고 몇몇은 당에서 축출됐다. ‘문빠’의 일부는 ‘개딸’이 됐다.
정치인 팬덤은 민심과 멀어진 기득권을 깨고 국민과 정당의 거리를 좁히는 촉매나 가교의 역할을 한다. 순기능이다. 평화적 정권 교체를 추동했던 김대중 지지자나 대선 후보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밀어 올리고 극적인 대선 승리를 일궈낸 ‘노사모(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가 그런 사례다. 김대중·노무현 팬덤은 그 어떤 정치인의 지지자보다 열정이 있었지만, 자기편 잘못도 비판하고 때론 책임도 졌다. 그 시절엔 정권 실세나 당 지도부와 맞짱을 뜨던 ‘여당 내 야당’ 인사들이 숨 쉴 공간이 있었다.
야당 시절 민주당이 탄핵안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우방을 향해 강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도 강성 지지층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여당이 돼서도 당 대표가 되겠다는 후보들은 제1야당의 해산과 소속 의원 제명을 거침없이 입에 올리고 사법부 독립을 위협하는 위헌적 법안을 무시로 발의한다. 정당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지적 정도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트럼프 관세 협상’ 와중에 지지층의 이해를 국익에 앞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강성 지지층에 포위된 당의 현주소다.
보수 회생의 방식으로 ‘개딸’을 차용한 전씨의 발상은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 그대로다. 민주당이 ‘개딸 정치’로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는 전제부터 틀렸다. 민주당은 느닷없는 비상계엄으로 보수가 먼저 무너진 자리에 무혈입성했다고 보는 게 진실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퍼진 ‘극우’라는 낙인은 넘어설 수 있다고 치자. ‘반(反)헌법 세력’이라는 주홍글씨는 어찌할 건가. 위헌 결정이 난 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에 경도된 세력이 법치와 질서를 중시해야 할 보수 정당 재건의 주체로 나선다면 국민이 동의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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