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가족이 고령자를 돌보다 지쳐 살해하는 ‘간병살인’…. 최근 노노돌봄 취재를 위해 현장을 체험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현재 고령의 부모님이 계시고 한때 복지를 공부한 입장에서 노인문제에 대해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조차 호스를 통해 섭취해야 하는 80대 장기요양보호대상자를 직접 케어해 보니 이런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문제처럼 다가왔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은 ‘노노케어’ 현실을 25년 전부터 직면했다. 80~90대의 부모를 60대의 자식이 돌보는 구조, 혹은 노인이 병든 배우자를 돌보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말이면 한국은 전체 인구의 약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이 시점에서 두 가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턱없이 부족한 돌봄 인프라 부족과 가족이 간병을 책임지는 시스템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것. 그 예로 최근 몇 년간 발생한 간병살인은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감내해 온 육체·정서적 피로는 희생적 노고자를 가해자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국가·국민이 부담해야 할 구조적 문제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과제를 제도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에 도입된 ‘개호보험제도(介護保?制度)’다. 정부·지자체가 보험료 50%를 지원하고, 40세 이상 국민이 건강보험 등으로 50%를 부담해 고령자에게 전문 요양보호사의 방문 돌봄, 주간 보호센터, 단기 입소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는 민간 요양보호센터를 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는 우리와 다른 국가 주체의 구조다. 특히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통해 노인들이 자신의 집 등에서 돌봄, 의료, 일상을 통합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재 보호사 저임금, 인력수급 등 이미 열악한 조건에 처한 우리의 민간 요양시설로는 궁극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 이상 가족에 의한 돌봄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지역 중심의 돌봄 인프라 구축, 공공 중심의 간병 인력 확충, 치매 등 특수 돌봄 대상자를 위한 맞춤형 정책이 절실하다.
‘커뮤니티 케어’ 개념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노인이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지역사회가 책임진다’는 원칙 아래 지자체 주도의 통합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돌봄의 공공성을 높여 지자체의 역할을 강화하고, 생활밀착형 돌봄 서비스를 더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고령자 스스로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도 필요하다. 간병에 지친 가족을 위한 심리·재정적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돌봄 휴직제 확대, 간병비 세액공제 등 실질적 지원과 가족을 돌보는 이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정기적인 상담과 지역사회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이것들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일본의 25년을 5년 만에 따라잡겠다는 각오로,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사회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이제는 생각이 아닌 실행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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