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6월 말 공개된 이 작품은 일주일 만에 40여개국에서 영화부문 1위, 68일째인 지난달 27일 누적 시청수 2억3600만을 돌파하며 역대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화로 이름을 올렸다. 추정되는 예상 수익은 10억달러(약 1조3884억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수익성이 큰 지식재산권(IP)으로 자리 잡을 기세다.
케이팝을 소재로 한 작품의 세계적인 성공에 한국인이라면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나라가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내 그 흥분은 가라앉았다. 막대한 수익을 올려도 직접적 이득이 없다는 점, 왜 한국에서는 케데헌이 나올 수 없냐는 안타까움, 만화를 아이들이나 소비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 더 공격적인 투자와 IP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 등이 쏟아졌다.

이런 반응을 보며 아쉬운 것은 대체로 작품 외적인 요소에 비판이 쏠려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주제의식이나 서사, 한국에선 낯설지만 세계적으로 먹히는 흥행 요소에 대한 고찰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제작, 비평, 의제설정 등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여기에 있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 한국에서 케데헌을 못 만드는 이유는 이런 작품 내적인 고민이 부족한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케데헌의 주인공 루미는 자신이 물리쳐야 하는 악령의 피를 갖고 태어났다는 점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지만, 단점을 숨기기 급급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성장하고 승리한다. 전형적인 디아스포라(타지에 뿌리내린 이방인)의 극복 서사로, 국적 불문 보편적인 공감대를 일으킨 요소로 평가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비주류인 사람이나 문화에 여전히 배타적인 풍토가 강하다. 다수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표준화하려 압박을 조이는 사회다. 미국이 케이팝 스타 이야기로 대성공을 거둔 데 대해 ‘타문화 빨아들이기’라며 불평하지만, 정작 이곳에서 다양성을 흡수하려는 노력은 미미하다. 케데헌식 성장 서사가 탄생하기엔 여러 모로 낯설다.
여성서사 측면에서도 케데헌은 새롭다. 성공한 한국형 여성서사에서 익숙한 그림은 주로 이성 간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결말, 여성이 사랑 때문에 죽음을 맞는 비극을 미화하기, 잘난 여성의 추락을 대서사시로 보여주기 등이었다. 많은 여성 관객이 이런 전개를 구태의연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금, 케데헌의 여성들은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루미를 비롯한 헌트릭스 멤버들은 남자들과 로맨스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으며, 때로 흔들릴지언정 결국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이들이 사랑에 발목 잡히지 않고 사자보이즈 멤버들을 가차없이 베는 장면은 트렌디한 여성서사의 덕목 그 자체였다. 여성을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케데헌의 성공으로 보듯 이는 이미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문화의 용광로 미국이 케데헌을 만들 때 한국은 ‘오징어게임’과 ‘더글로리’로 대성공을 거뒀음을 상기한다. 잔악무도한 경쟁, 인생을 걸어 성공하는 화끈한 복수극을 가장 잘 만드는 사회라는 점이 새삼 씁쓸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