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모자는 단순한 복장의 일부가 아니다. 소속을 나타내는 표식이자 군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그중에서도 ‘베레모’는 유별나다. 둥글게 머리를 감싸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 모자는, 어떤 이에게는 불편한 천 조각일 테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자부심이다. 군복의 시대는 변해도 베레모를 쓴 병사들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속엔 ‘나는 이곳의 일원’이라는 자각과 ‘이 모자를 쓸 자격이 있다’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베레모와 군복의 연결고리는 1889년 프랑스의 알프스 산악부대에서 시작된다. 비좁은 탱크 내부와 상부의 뚜껑(해치)을 드나들기 좋다는 의견에 따라 1924년 영국의 첫 탱크부대 유니폼으로 승인된 뒤 소규모 특수부대 모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다양한 색상의 베레모가 여러 특수부대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미국 육군 대표 특수전 부대 ‘그린베레’도 그중 하나다. 베레모로 기억되는 인사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아마도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 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일 것이다. 베레모를 쓰고 시가를 문 그의 모습을 많은 젊은이가 영문도 모른 체 칭송하며 좇았다.
육군은 2011년 특전사가 착용하던 베레모를 ‘강한 인상을 주는 디자인’이라며 디지털 무늬 위장복과 함께 전 장병에게 보급했다. 당시 국방부는 미 육군이 베레모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시기 미 육군은 10년 만에 베레모에서 다시 ‘패트롤 캡’이라 불리는 전투모로 교체하는 중이었다. 육군은 당시 베레모가 가진 불편함으로 이런저런 논란이 제기됐으나 묵살했다.
베레모는 폭염을 막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된다. 챙이 없는 탓에 햇빛을 전혀 막지 못해서다. 소재가 두꺼워 한여름 제대로 통풍도 되지 않을뿐더러 세탁기나 고온의 물로 빨 경우 줄어들기도 했다. 장병들의 자부심 대신 불편함이 쌓이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결국 육군이 지난달부터 베레모 대신 ‘챙 달린 전투모’로 단계적인 교체에 나섰다. 설문에서 베레모보다 전투모를 선호하는 장병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베레모를 쓴다고 모두가 특수부대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늦었지만 다수 장병을 위해 잘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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