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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5800만원 날렸지만”…443대1 경쟁 뚫고 하늘로 간 91년생 [한끗차人]

입력 : 2025-11-15 07:00:00 수정 : 2025-11-14 13:05:38
윤성연·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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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담 ‘전세지옥’ 저자 최지수씨 인터뷰
올해 국민조종사 10기 선발돼 T-50 탑승
“사기꾼한테 돈 뺏겼지, 꿈 뺏긴 게 아냐”
‘한끗차人’은 화제의 인물을 만나는 인터뷰 연재입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별의별 분야의 별의별 사람들을 조명하며 그가 왜 주목받는지 만나러 갑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특별함을 만드는 건 언제나 ‘한 끗 차이’. 그 차이를 솔직한 대화로 털어드립니다. <편집자주>

 

어렸을 때부터 꿈을 위해 모아온 전 재산, 이 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면? ‘전세지옥’ 저자 최지수(34)씨는 2020년 7월 첫 전셋집을 얻은 1년 뒤, 집이 대출 문제로 경매에 넘어간 것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전세 사기’였다. 그렇게 파일럿 훈련을 받고자 차곡차곡 모았던 5800만원은 한순간 사라졌다. 취업난과 주거난에 시달리던 최씨는 2023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최씨는 여전히 꿈을 꾼다. 지난달 443 대 1의 경쟁을 뚫고 제10기 국민조종사에 선발됐다. 고등훈련기 T-50를 타고 하늘을 난 그는 “사기꾼들한테 돈을 뺏겼지, 꿈을 뺏긴 게 아니다”라고 외쳤다. 민간 조종사라는 꿈을 향해 날아가는 최씨를 지난 6일 화상 인터뷰로 만나봤다.

T-50에 탑승한 최지수씨. 본인 제공

 

- 대출받아 겨우 마련한 전셋집, 어쩌다 경매에 넘어갔나.

“만만치 않은 비행 훈련 비용을 모으기 위해 천안에서 회사에 다녔다.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바퀴벌레가 나오더라. 8개월을 버티다가 월세 30만원을 아끼기 위해 전세를 계약했다. 공인중개사가 안전한 매물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깡통전세였다. 2020년 7월에 이사하고 나서 1년 만에 경매통지서가 붙었다. 해외 취업이 확정된 날이었다. 별일 없을 것이라는 공인중개사 말을 믿고 출국했는데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다. 결국 대출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 전세 사기로 날린 금액 규모와 이후 상황은?

“5800만원 정도다. 29살에 취업해서 약 3년간 모은 전 재산이었다. 지난해 빚은 겨우 다 갚았지만 전세금은 아직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당시 두 달만 경매가 늦게 완료됐다면 재작년 6월에 발의된 전세사기특별법의 혜택을 받아 일정 부분 보존했을 것 같기도 하다.”

 

최씨가 전세로 살던 집은 공인중개사, 은행장까지 연루된 조직적인 전세사기의 결과물이었다. 집주인은 계약서를 위조해 금융기관을 속여 과도한 대출을 실행했고 그 결과 80억원 가치 두 건물에 5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최씨의 전셋집은 2023년 4월에 경매가 종료됐고, 최씨는 같은 해 9월 집에서 쫓겨났다. 

전세 사기를 당한 방 내부. 본인 제공

 

- 주거난에 취업난까지,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

“전세사기를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며 옥상에 올라갔던 적도 있다. 2023년 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횟집과 초밥집 등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참했다. 시급 1만2000원, 5800만원 벌려면 4800시간이다. 생선들의 목을 따면서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는 생각을 했다. 

 

- 힘든 시간을 잘 버틴 게 대단하다.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럼에도, 그 사람들한테 돈을 뺏긴 것은 어쩔 수 없어도 꿈마저 뺏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치밀었다. ‘최지수’라는 사람의 인생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끝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2023년 12월 원양상선에 올랐다. 파일럿 훈련비를 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오가며 6개월간 주방보조원으로 일했다. 꿈을 위한 밑천을 벌고 하선했다.”

지난 6일 세계일보와 화상 인터뷰 중인 최지수씨. 그는 현재 경북 소재 비행훈련원에 입과해 훈련을 받고 있다.

 

- 그토록 간절했던 꿈, 조종사는 왜 되고 싶었나. 

“어느 소년이나 한 번쯤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포부를 가져봤을 거다. 어렸을 적 시력이 좋지 않아 체념했는데, 성인이 된 이후 여러 국가를 여행하며 다시 꿈꾸게 됐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하늘에 비행기를 발견하면 그 비행기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는 할 정도로 비행기를 사랑한다. 민간 조종사는 시력 제한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다.”

 

- 올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국민조종사 4명 중 1명이 됐다. 하늘을 누빈 소감은?

“국민조종사는 T-50이나 FA-50 항공기 후방석에 탑승해 하늘 위에서 조종사 임무를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소년 최지수의 전투기 조종사라는 꿈을 단 하루 만이라도 이뤄주고 싶었다. 기존에 국민조종사에 선발된 분들은 각자만의 상처나 성공담으로 이뤄진 사연을 갖고 있었기에 2년 전까지만 해도 도전해 볼 용기가 없었다. 물론 아직도 내 삶에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고 겨우 원점으로 돌아온 소중한 경험이 생겼다. 비현실적인 일을 겪으면 꿈을 꾸는 기분이라고 표현하고, 큰 목표를 성취하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말들 하지 않나. 이건 마치 꿈에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항공기 앞에 서 있는 최지수씨. 본인 제공

 

- 다음 페이지는?

“사기꾼들과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민사 소송도 진행 중이다. 반드시 그들에게 뺏긴 행복을 다시 찾아와 좋은 판례가 되기를 바란다. 꿈을 향해서도 나아갈 것이다. 지난해 10월 비행훈련원에 입과해서 정식 훈련을 받고 있다. 새로운 책도 출간하고 싶다. 820일간의 전세 사기 피해를 담은 내용인 ‘전세지옥’이 1탄이었다면, 2탄은 파일럿이 돼 꿈을 실현하는 과정을 담고 싶다. ‘사기꾼들한테 돈을 뺏겼지, 꿈을 뺏긴 게 아니지!’가 가제다.”

 

- 최지수만의 ‘한 끗 차이’는?

“도전이다. 불가능해 보일수록 재밌다. 물론 10개 도전하면 8∼9개는 실패하지만 1∼2개는 성공하다 보니 불가능은 없다는 마인드를 갖고 살아간다. 조종사를 꿈꾼 것도 마찬가지였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이런 나를 보면서 꿈도 목숨도 내려놓지 말고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포기하지 않은 이의 꿈은 하늘이 열어줄 것이니 부디 힘든 시간을 무사히 완주하길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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