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원 전반의 공감대와 숙의(熟議)가 전제되지 않은 채, 특정 시점에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법 개혁’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공세다. 대법관 증원의 이유로 사건 접수 건수, 사건 처리율 같은 통계 지표만을 과도하게 내세우는 주장은 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증원론을 꺼내 든 시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 이튿날부터였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뚜렷한 증거다.
민주당이 최근 추가로 꺼내 든 ‘사법행정위원회’ 신설 논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민주당 사법불신극복·사법행정정상화 태스크포스(TF)는 18일 법원 인사·행정 등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비법관이 참여하는 개방형 회의체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법조인과 비법조인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담았던 이탄희 전 의원 안,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논의됐던 사법행정자문회의 안 등 과거 여러 방안을 두루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행정처 폐지 논의는 2017년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계기로, 수직적·관료적 사법행정을 완화하고 법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됐다는 점에서 일정한 설득력은 있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이 다시 꺼내 든 행정처 폐지 카드는, 법관 인사와 재판에 개입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리고 포장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어떤 판사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위 같은 형태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사법행정 방식은 논의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순진한 것인지, 다 함께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권이 바뀌어 자신과 뜻이 다른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그 위원회가 내려보낸 인사와 중대한 사법행정 결정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행정처를 전면 폐지하고 사법행정위가 의사결정 및 집행 권한을 총괄적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은, 심지어 김명수 사법부조차 “위헌 소지가 크다”며 반대한 사안이다. 헌법 101조 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법권에는 재판뿐 아니라 사법행정권까지 포함된다는 이유에서다.
법관 인사는 사법행정의 핵심이자 법관 독립과 직결되는 영역이다. 법조계에서는 여권에 유리한 외부 인사들로 위원회가 꾸려져 법관 인사권을 쥐게 될 경우, 사법부 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부장판사는 “정치 세력이 법관 인사와 사무분담에 개입할 통로를 열어주게 되는 것”이라며 “법관들이 정부·거대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재판을 하는 데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위원회라는 조직은 대개 권한은 크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분산되는 구조적 맹점을 안고 있다. 외부 인사가 대거 참여한 위원회가 중대한 결정을 잘못 내렸을 때,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물을 것인가. 현 정권이 검찰총장 자리를 4개월째 공석으로 방치하는 것 역시, 실상은 검찰총장의 막강한 최종 결정권을 사실상 외부로 분산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를 통해 확인했다. 위원회가 정권 눈치를 보며 비슷한 사태를 일으켜도, “경위를 설명하라”고 따져 물을 사법행정 책임자조차 없으니 소위 ‘항명’조차 성립시키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어쩌면 이런 무책임한 구조 자체가, 정권이 그리고 있는 그림일지도 모른다. 판사들은 눈 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못 본 척하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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