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못 구하자 전나무 사용
빨리 자라는 대신 강도는 약해
급하다고 적당히 하면 꼭 뒤탈
봄이다. 산수유 가지에 노란 꽃망울이 맺혔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 꼭 여인네 머리에 꽂힌 떨잠같이 예쁘다. 이제 겨우내 추위에 숨죽이고 웅크렸던 모든 나무에 생기가 돌겠지. 날이 조금 더 풀리면 오대산 월정사 앞 전나무숲길을 맨발로 걸으며 피톤치드를 한껏 마시고 싶다. 그런데 나는, 2000년 이후, 이 길을 걸으면 으레 경복궁 근정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1999년, 나는 문화재청에서 경복궁 근정전 수리를 맡았다. 그 전부터 근정전 동남쪽 처마가 기울어 건물의 안전이 매우 우려스러운 상태였다. 수리를 위해 근정전 지붕을 해체했더니 예상했던 데로 동남쪽 모서리 기둥이 부러져 처마가 처진 만큼 꺾여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탄 후 270년 이상 폐허로 남아 있다가 고종 2년(1865) 4월 2일,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명으로 중건이 시작되었다. 고종 3년(1866) 3월 10일, 경복궁 영건도감(공사를 위해 임시로 만든 기관)에서 근정전 공사를 위해 길일을 정했는데, 터를 닦는 개기(開基)는 6월 8일 묘시(오전 5~7시), 대(臺)를 쌓는 축대(築臺)는 6월 24일 묘시, 기초 돌 놓는 정초(定礎)는 8월 25일 미시(오후 1~3시)로 정했다. 12월 8일에는 기둥 세우는 입주(立柱)와 상량하는 날을 각각 이듬해 1월 7일 자시(밤 11시~ 새벽 1시)와 2월 9일 묘시로 정했다. 근정전 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에서 정초와 상량이 계획대로 실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문을 달고, 벽을 치고, 지붕을 이는 공정이 남아 있는데 공사가 끝난 기록은 없다. 고종 4년 11월 16일, 근정전에서 하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 전에 공사가 끝났을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근정전은 공사가 끝난 후 대략 130년 만에 기둥이 부러지는 치명적인 탈이 난 셈이다.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근정전은 경복궁의 으뜸 전각답게 ‘월대’라 부르는 넓은 단을 두 단으로 높게 쌓고 그 위에 이층으로 큰 집을 지어 위엄을 과시했다. 바닥에서 이층까지 하나로 꿰뚫는 기둥을 ‘고주(高柱)’라 하고 그중 모서리에 있는 고주를 ‘귀고주’라 하는데 탈이 난 기둥이 동남쪽(근정전을 바라보고 오른쪽 앞) 귀고주였다. 근정전 귀고주는 지름이 약 0.7m, 높이가 대략 12m에 이르니 나무의 건조수축을 고려하면 생나무였을 때는 어마어마한 크기였을 것이다. 옛 기록에 고주감으로 끝 지름이 3자(약 0.9m) 이상, 길이는 50자(약 15m) 이상이라고 했으니 그 크기를 어림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둥이 두 동강으로 완전히 부러지지 않고 부러진 부분이 꺾이기만 했을 뿐 위아래가 붙어 있어 지붕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목재는 섬유질로 되어 있어 누르는 힘과 당기는 힘에 모두 강해 웬만해서는 두 동강으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러진 귀고주의 수종을 분석해 보니 전나무였다. 수종을 분석하기 전에는 당연히 소나무일 것이라고 짐작했기에 공사 관계자 모두가 놀랐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건축재료로 소나무를 으뜸으로 쳤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자신의 저서 ‘임원경제지’에서 소나무 이외의 나무는 비록 좋은 목재가 있어도 마구간이나 창고 등 하찮은 건축물에 쓴다고 했으니, 설마 궁궐에 그것도 으뜸 궁궐의 으뜸 전각에 소나무가 아닌 나무를 썼으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근정전의 큰 기둥 대부분이 전나무였다. 가장 힘을 많이 받는 귀고주 4개 중 3개를 포함해 큰 기둥 14개가 전나무였다. 큰 재목은 소나무를 구할 수 없어 전나무로 대신한 것 같았다.
이러한 정황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기록한 ‘영건일감’에 잘 나타나 있다. ‘영건일감’ 고종 3년 5월의 기록에 의하면, “이번 법전(法殿: 으뜸 전각인 근정전)을 영건하는 공역은 막중 막대한 일에 관계되고 들어갈 대량(큰 들보)과 고주는 가장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만약 몸체의 크기와 길이가 맞지 않는다면, 사용하기 어렵기에 서울과 지방, 가깝고 먼 거리를 따지지 않고 사방으로 샅샅이 찾았지만 끝내 합당한 재목이 없어서 걱정으로 속이 타는 중, 이제 들으니 함경도 덕릉, 안릉, 장진, 후주 등지에 몸체가 큰 재목이 많다고 하니 듣기에 매우 다행스럽다.” 6월의 기록에는, “법전의 영건이 이미 공역을 시작하여 들어갈 대량과 고주를 서울 밖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을 찾았지만 끝내 합당한 나무가 없어서 한창 이것을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지금 함경 감영에서 보고한 것을 접하니 함흥 땅에 소나무 36주가 있어 ….” 9월에도 다급한 기록이 있다. “법전 영건 때 대량과 고주로 쓰기 위한 체대목(들보나 기둥에 쓰는 큰 목재) 36개를 안변부에서 벌목하여 동해에서 남해를 경유할 것이니… 지금 큰 공역이 매우 복잡해서 이 나무가 올라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물길로 내려보낸 지가 이미 서너 달이 될 정도로 오래되었으니….”
함경도에서 서울까지는 동해와 남해, 서해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 뱃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종 3년 11월 29일 ‘일성록’에 의하면, 근정전에 사용할 목재 37개를 함흥에서 벌목하여 동해를 거쳐 남해로 운반하여 보령, 비인, 서천 등지로 운반한 이원 현감 남문익의 노고를 치하했다.
고종 4년 1월 7일에 기둥을 세웠으니, 이때까지 소나무를 못 구해 귀고주를 비롯한 큰 기둥 대부분을 전나무로 대신한 듯하다. 전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빨리 자라는 속성수라 구하기 쉬웠던 것 같다. 그러나 전나무는 빨리 자라는 만큼 강도가 소나무 강도의 70~8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70년 만에 세운 근정전이 130년 후 기둥이 부러지는 큰 탈이 나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급하다고 적당히 하면 꼭 뒤탈이 나는 법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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