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합창대회서 부르던 노래
어떤 클래식 명곡보다 기억 남아
그 안 흐르던 ‘시간의 기억’ 소중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완성도가 높고, 연주가 정교하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작품들을 떠올린다. 이름만 들어도 기대하게 되는 공연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무대나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연주 같은 것들이다. 그런 자리에서 듣는 음악은 분명 특별하다. 수많은 악기가 하나의 호흡으로 맞춰지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음들은 마치 계산된 것처럼 정확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음악을 들으며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꼭 그런 것들만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나는 음악은 전혀 다른 곳에도 있다. 어릴 적 일상 속에서 반복해서 들리던 음악들이다. 피아노 학원 문을 열면 늘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소나티네나 체르니 연습곡, 학교 음악 시간에 익숙해질 때까지 따라 불렀던 멜로디나, 방송부 스피커를 통해 쉬는 시간마다 흘러나오던 짧은 클래식 음악 같은 것들이다. 일부러 귀 기울여 듣지도 않았고, 곡의 제목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런 소리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었다.
학창 시절 합창대회에서 부르던 노래도 그렇다. 음정이 조금씩 틀리고, 박자가 맞지 않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다 같이 맞춰가던 시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누가 더 잘 불렀는지보다, 그날의 긴장된 분위기 그리고 함께 소리를 내던 순간이 더 크게 남아 있다. 물론 이런 음악은 최고의 피아니스트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무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소리의 완성도나 깊이, 정교함으로만 보면 애초에 견줄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문득 떠오르는 건 오히려 일상 속의 음악들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음악보다, 눈앞에서 만들어지던 음악. 조금 서툴고, 조금 거칠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시간과 함께 남아 있는 소리들이다.
음식도 비슷하다. 예약하기도 어렵고, 한 접시마다 정교하게 설계된 파인다이닝은 분명 인상적이다. 재료의 조합과 표현 방식, 플레이팅까지 하나의 완성된 작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더 떠오르는 건 다른 음식들이다. 하굣길에 먹었던 떡볶이, 드라마를 보면서 먹었던 치킨, 늦은 밤 혼자 끓여 먹던 라면, 혹은 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차가운 반찬 같은 것들이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만, 그런 한 끼가 더 오래 남는다.
엄마가 해주던 음식은 더욱 그렇다. 완벽하게 차려진 식사가 아니어도 괜찮다. 간이 조금 달라도, 모양이 가지런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음식은 맛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시간과 함께 남는다. 식탁의 온기,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 그날의 분위기까지 함께 따라온다.
반드시 완벽했기 때문에 마음에 남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중에 다시 떠올리게 되는 음악은, 단순히 ‘좋았던 음악’이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지나온 음악이다. 피아노 학원에서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던 소리, 합창대회에서 서로 눈을 맞추며 이어가던 멜로디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종종 더 좋은 연주를 찾고, 더 완벽한 음악을 기대한다. 물론 그런 음악은 분명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마음을 오래 붙잡고 있는 음악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음악이다.
어쩌면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 순간을 함께 기억하게 만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어떤 멜로디 하나가 계기가 되어, 오래전의 장면이 다시 떠오르고, 그때의 분위기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 음악이 얼마나 정교하게 연주되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보다 더 크게 남는 것은, 그 음악이 흐르던 시간과 그 안에 있었던 나의 모습이다.
덕분에 우리는 때때로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그 음악이 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하루, 함께 있었던 사람들까지도 음악과 함께 다시 떠오른다. 그렇게 음악은 하나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 어쩌면 좋은 음악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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