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기자로 일하다 보면 세계 곳곳의 슬픔을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지면에 다 담을 수 없는 누군가의 고통, 차마 실을 수 없는 끔찍한 사진들. 안타까움이 쌓이고 쌓이면 무기력해진다. 우울하다.
최근 각종 콘텐츠의 범람으로 뉴스 소비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전쟁 기사는 많이 읽힌다. 그 관심의 끝에는 전쟁의 아픔보다 숫자가 있다. 국제 원유가격, 환율, 글로벌 증시 등. 사람들은 전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출렁이는 숫자를 바라보며 일희일비한다.
사실 그럴 만하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를 담당하는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원유가격이 치솟고 시장이 흔들렸지만 잠깐이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휴전 후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고, 국내 증시도 반도체 특수가 전쟁 악재를 눌렀다. 자금이 코스피에 몰리면서 빚투가 성행하고, 매일 치솟는 숫자에 모두가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다. 세상살이가 그렇다. 누군가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기회를 잡는 것을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기회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이 전쟁을 숫자로 적어보자.
개전 55일째. 이란, 레바논, 걸프지역 각국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는 약 6200명, 그중 민간인만 최소 3400명이다. 어린이 324명이 포함된 숫자다. 전쟁 첫날 수업 중이던 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학생 120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레바논에서만 전쟁 현장을 취재하던 언론인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 평화유지군 5명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이란과 레바논에서 집을 잃은 사람은 400만명, 이 가운데 어린이만 37만명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레바논의 식량 시스템이 기근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전쟁 탓에 추가로 식량 위기에 빠질 인구를 4500만명으로 추산했다. 이것이 숫자로 본 전쟁의 실상이다.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유니세프였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후원금이 턱없이 모자라 예전 후원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정기후원을 부탁하고 있다고 했다. TV와 유튜브 광고로 유입되는 후원금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 들어 이렇게 많은 전쟁과 분쟁이 한꺼번에 이어지는 국면도 드물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벌써 4년2개월째 전쟁 중이고, 말로만 휴전 중인 가자지구에서도 매일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3년째를 맞은 수단 내전으로는 15만명 이상이 숨지고, 12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러니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기부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어렵지도 않다. 믿을 수 있는 기관 하나를 정해 마음을 보태면, 도움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방식으로 전달된다. 어떤 기회로 얻은 것의 일부를 나누는 일은, 그 기회로 비롯된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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