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갈등·내부 분열 우려로 신중
日 로스쿨·법대·일반인 공생 도모
韓도 ‘개천의 용’ 막는 제도 개선을
이재명 대통령이 음서제를 거론하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에 대한 검토를 지시는 했으나 상당히 조심스러운 스탠스다. 지난달 광주·전남 타운홀 미팅에서 ‘금수저만 다니는 로스쿨을 나온 사람만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참석자 지적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일정 부분 공감한다”면서도 “사회적으로 격론이 벌어질 일이어서 쉽게 얘기는 못할 문제”라고 한 것이다.
사실 로스쿨 제도 개선은 2022년 대선 때 이 대통령 공약이자 쟁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 대통령은 “계층이동 사다리를 확실히 보장하겠다”며 청년을 위한 3대 공정 정책으로 사시 부활, 정시 확대, 공정 채용을 약속했다. 국민의힘도 원래는 제도 개선 입장이었다. 미래통합당 시절인 2020년 총선에서 변호사 예비시험 도입을 공약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현 제도 유지를 선언했다. 정의당 후보 심상정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개혁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라며 이 대통령을 공박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득표엔 큰 도움이 안 되면서 진영 내 갈등만 키우는 이슈였던 셈이다. 작금의 신중한 자세도 의·정 갈등과 같은 사회적 논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지지층 분열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몸 사리는 발언에도 대한변호사협회는 “해묵은 논쟁은 안 된다”고 발끈하고 나섰고, 대한법학교수회는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독점적 기형적 제도”라고 개선을 요구했다.

일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변호사 시험(일본 명칭 사법시험) 응시 자격이 크게 보면 투트랙, 작게 보면 스리트랙이 있다. 우선 로스쿨 졸업 제도와 함께 연령·학력 무관하게 응시하는 예비변호사시험(일본 명칭 사법시험 예비시험)이 양대 축이다. 예비변시 합격자는 3년 과정의 로스쿨 졸업생과 동등한 변시 응시자격을 얻기에 시험 난도가 만만찮다. 예비변시는 로스쿨 재학생도 볼 수 있어 환영받았다. 올해 예비변시 합격자(449명) 평균 연령은 26.6세로 최고령 66세, 최연소 17세다. 직종별로는 대학생 279명, 로스쿨생 8명, 회사원 50명, 공무원 30명 등이다. 2022년 예비변시의 로스쿨 합격자는 124명에 달했다. 2023년 제3 경로인 ‘재학 중 수험자격’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우수 재학생이 바로 변시에 응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로스쿨 재학생이 소정의 과목 이수 등 조건을 채우면 졸업 전에라도 변시 응시자격을 줘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로스쿨 자체가 지상가치인 양 현 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치밀한 개선을 통해 로스쿨과 로스쿨생, 대학 법학과, 일반인이 모두 공존·공생하는 현실적 제도로 바꿔가고 있다. 무엇보다 ‘희망의 길’을 틀어막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 최고 명문 로스쿨을 졸업한 한국인 변호사는 “로스쿨 학생들은 본인도 재학 중 응시할 수 있어 예비변시에 반대하지 않았고, 새로운 제도도 만들어져 예비변시든 새로운 제도든 응시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에서 이제 개천에서 용 나올 희망이 사라졌다는 말을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 2000년대 들어 수시 위주의 대학 입시, 고시 폐지, 기업의 공채 폐지와 인턴 중심 채용에 따라 취약 계층의 사다리 계단 상승은 거의 불가능하다. 입시, 채용에서 얼마나 많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횡행하나.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노무현, 이명박, 이재명의 자수성가 스토리는 더는 나올 수 없다. 이대로라면 우리 공동체는 미래가 없다. 로스쿨 측은 특별전형, 장학금 지급 등을 예로 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문제는 입시, 공직·법조 입문, 병역에서 우리 국민은 절대적 평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불공정·불공평이 개입할 바늘구멍만 한 여지만 있어도 직접 관계없는 사람마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이 점에서 로스쿨 졸업생만 응시할 수 있어 사실상 학력·금력(金力)의 제한이 설정된 현 변시 제도의 개선은 장차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다. 현실적 개선책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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